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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간판문화가 대한민국을 디자인한다

  • 입력 2012.02.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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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간판의 시초는 상품을 그대로 내놓아 전시하는 형태였으나 점차 그림과 글씨를 사용하게 됐고 상업활동이 복잡해지면서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간판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로마의 목로주점에서 송악나무 가지를 묶어 걸어놓고 간판으로 삼았으며 17세기경까지도 영국의 여관이나 술집에서 사용됐다. 대체로 초기의 간판은 모자점에선 모자를, 농기구상에서는 삽을 내걸어 실물을 간판으로 삼았다. 그러나 실물이 너무 큰 것을 노상에 내걸어 통행에 방해가 돼 18세기에는 법률로써 간판의 크기를 제한하고 벽에 밀착시키도록 했다. 그 후 런던이나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가게 앞에 상호나 옥호를 붙이는 것이 유행해 유럽 각지에 퍼져 나갔다. 19세기 이후의 간판은 광고적 요소와 장식적 요소가 혼합된 것으로 변질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옛날 추녀 끝에 등롱(燈籠)을 매달고 거기에 ‘주(酒)’자를 써넣어 주막을 표시하고 간판을 대신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기관 ·단체는 물론 상점·회사 등이 붓글씨로 된 입간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산업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간판의 종류와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상품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요즘은 가히 간판의 범람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간판은 설치장소에 따라 옥상간판, 벽면간판, 돌출간판, 점두(店頭)간판, 입간판, 빌보드(야외, 도로변에 세우는 간판) 등이 있고, 구조상의 종류로는 네온사인, 광고탑, 조명광고간판, 그림간판, 플라스틱간판, 시네사인(cine sign) 등이 있다. 또 교통광고로 차내광고, 차외광고, 고정광고(역 구내외) 등을 들 수 있다. 간판의 난립과 무질서한 설치를 방지하는 데는 광고주 자신의 자율규제 외에도 옥외광고물법, 도로교통법, 건축법, 소방법, 도시계획법 등에서 제한하고 있다. 옥외광고물을 설치하고자 할 때에는 광고물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행정관청에 사전 허가와 신고를 하고 설치하도록 돼있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이며 문화이다. 전국의 도시마다 간판은 크고 조잡해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간판은 건물에 간판이 붙어있는 게 아니고 간판 속에 건물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도시전체가 간판에 짓눌려 숨이 막힐 것 같다. 간판을 쳐다보노라면 현기증이 일 정도로 어지럽다. 난립한 간판들은 아예 공해수준이다. 우리나라 간판은 대형화, 무질서의 악순환으로 도시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적된 지 오래이다. 또한, 지나치게 많고 크며 현란한 간판으로 시민의 정서와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쟁력인 쾌적성(Amenity)을 저하시키고 있다.
간판은 단순히 광고로만 볼 수 없다. 간판은 도시의 경관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이며 도시문화를 창출하는 콘텐츠이다. 방송이나 신문광고는 보기 싫으면 안 볼 수 있지만 옥외광고는 거리에 나오면 안 볼 도리가 없다. 그런면에서 매체광고보다 옥외광고가 훨씬 더 일방적이고 강제적이다. 우리 사회의 간판처럼 공동체의 부재, 자율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동안 간판문화는 시민단체 및 언론에서도 문제가 계속 제기돼왔지만 개선정책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각 지자체에서도 개선하고자 노력은 하고 있으나 그다지 성과가 없는 이유는 행정중심의 획일적인 정비사업으로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종래의 행정자치부에서 이루어지던 공권력에 의한 단속, 정비차원의 간판개선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문화적 관점에서의 분석과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05년 8월 ‘공간 문화과’를 신설했다. 종래의 간판 정책에서 벗어나 문화적 간판으로서 간판문화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범사업과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자 했다. 지난해 11월 파주시에서 개최된 ‘간판문화학교’가 선진 간판문화 정착을 위해 파주시공무원과 관내 옥외광고업에 종사하는 CEO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 모범적 사례였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규제가 엄격하지는 못할망정 간판문화 정착을 위한 융통적인 법규제화의 필요성이 시급하다. 건축물 준공 허가 때 간판 크기와 숫자, 간판 색상까지 정해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선진국들은 간판의 크기와 허용 개수 면에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간판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경관 개선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바꾸는 것이다. 간판도 문화 콘텐츠로 발전 시켜야 간판의 난립을 막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다. 간판이 도시 미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간판은 공공시설물로 인식해 경제적 측면보다 공공의 사회질서라는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간판은 환경과 공공문제의 연상선상에서 관리돼야 한다. 무분별한 불법 간판은 물론 적법한 간판일지라도 전체 도시미관을 저해하고 있는 경우도 계도해야 한다.

단순한 제도개선이나 불법간판에 대한 규제 단속만으로는 간판문화의 획기적 개선에 한계가 있다. 종래 규제와 단속 위주의 접근에서 탈피해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간판에 대한 인식변화와 아름다운 간판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든다는 공감대 형성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간판은 공동체이며 도시이며 문화이며 미학이다. 간판이 공동체의 존재를 증명하고 도시의 바람직한 경관 요소로서 문화이다. 간판문화가 대한민국을 디자인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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