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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내외일보

<기고>‘죽정이’와 편견

  • 입력 2012.03.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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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농사를 하다보면 죽정이가 생긴다. 골라내지 않으면 모두가 죽정이 판이라고 낮은 등급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약자인 소외계층을 죽정이로 단정(Stigma)하기 쉽다. 실제로는 죽정이 보다 알곡이 더 많은데도 말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어느 집단이건 조직 내에서건 하물며 가족 간에도 허물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죽정이라 폄하하는 것은 과도한 편견(Bias)이다. 죽정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곡물로 그 쓰임새가 따로 있지 않은가? 진짜 죽정이는 타인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외면하고 골라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사를 자신의 가치와 기준에 맞추고 그렇지 못하면 비난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작년 겨울이었다. 군청 무한돌봄센터로 보내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기초생계를 위해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 대상자이다. 복지제도에 대한 이해가 넓고 도움을 구체적으로 요청하신 어르신으로 기억된다.

“내 자신 여러 번 사업실패하고, 자식들은 제 살기 바쁘고, 내가 뭐라도 하고 싶은데 지금 남은 것은 죽정이 같은 인생뿐이지요”라고 하셨다. “그럼 연세도 많으시고 하니, 그냥 자식 분들에게 의지해 사시는 게 어때요?” 순간 이렇게 말할 뻔 했다. 젊은 시절 남들이 부러워하던 은행원으로, 결혼 후는 건실한 사업가의 아내로, 그리고 누구보다 든든한 자식의 어머니로서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다만 남편의 한순간 빚보증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나이 들어 다시 시작하려니 여간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다시 식당을 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상담 내내 보여주신 잔잔한 미소와 자신감은 문득 영화 ‘카모메 식당’ 여주인을 떠올리게 했다. 헬싱키의 한 한적한 마을, 조그마한 식당을 무대로 동양인 세 여자와 주변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는 다소 밋밋하지만 소박한 정감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지나 낮선 곳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서로를 쉽게 묶어주는 묘한 힘이 있다. 영화는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처음 만난 여자들이 일종의 자기공개(Self-disclosure)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슬픔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죽정이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 여자들에게 영화 속 식당은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이국(異國)적인 풍경만큼이나 서로 다른 인생들이 따뜻한 음식을 매개로 희망을 꿈꾸는 이야기다.

‘그래. 우리가 산다는 게 아름답다면, 뭐 이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돼진다.

마침내 주민복지지원과 생업자금융자지원 담당자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상담을 거쳐 무한돌봄 생계비를 지원하고 저소득층 창업자금이 지원되도록 서비스를 연계했다. 죽정이만 보지 않고 어르신의 경험과 연륜이란 알곡을 더 본 것이다.

내담자는 현재 자리를 옮겨 당신만의 ‘카모메 식당’을 열어 운영 중이다. 고령이란 편견을 딛고 드물게 자활에 도전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2010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5년 전에 비해 24.3%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총인구 증가율(2.0%)보다도 12.2배 높은 수치다. 노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복지가 가야할 길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다음은 지난해 연말 필자에게 여러 가지 고맙다며 보내주신 글 일부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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