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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감추고 숨겨서, 국민의 생명과 바꿀 것인가

  • 입력 2012.03.1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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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지난달 9일 오후 8시34분부터 12분간 전력공급이 완전히 끊기는 긴급한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한달이 넘게 숨겨왔다. 원자력 안전관리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 심각한 사건이다. 발전소장이 사고 직후 간부들을 불러 모아 은폐하기로 모의하고 직원들의 입단속을 했다고 한다. 사고 당시 현장 근무자들은 원자력안전위에서 파견된 현지 주재관 등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운영일지에도 사고 관련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처럼 내부에서 조직적인 사고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전원이 끊겼을 때 바로 작동해야 할 비상디젤발전기 두 대가 움직이지 않았고 최후 수단인 예비 비상발전기마저 먹통이었다. 긴급사태에 대비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이것도 그냥 묻혀버릴 뻔한 고리 원전 1호기의 ‘블랙아웃(station blackout·발전소 대정전)’사건이 우연히 술자리에서 지역 시의원이 엿들은 한마디가 단서가 된 것이다. 지역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때서야 직원들이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한수원 사장이 알게 된 것도 한 달이 지나서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고를 누락한 담당 책임자는 그사이 한수원 본사의 위기관리실장으로 영전했다. 위기관리를 책임지는 자리에 위기를 초래한 사람을 앉힌 것이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사고 발생 15분 이내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와 같은 재앙이 일어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1년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도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 당시 강력한 쓰나미가 밀어닥친 뒤 침수된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리 원전(原電) 1호기의 비상 디젤 발전기가 지난달 정부 기관의 성능 검사에서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작동 불능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수명이 다한 34년 된 노후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일어났다. 원전은 외부 전력 공급망이 끊어지면 곧바로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돼야 한다. 냉각수 순환장치를 계속 작동하기 위해서다. 비상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으면 냉각장치가 멈추고, 저장수조에서도 핵연료가 공기 중에 노출되고 대규모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이어진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이렇게 일어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만들고 2015년까지 1조1,000억원을 투입해 안전성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시운전을 제외하고 모두 21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우리나라 전력량의 38%를 원자로 발전소가 담당하고 있다. 원자로 1기마다 2대씩 비상디젤발전기가 있다. 이 중 고리 1호기를 포함해 설치한 지 20년이 넘은 게 18대나 된다. 한수원의 정기 검사에 작년 정부의 정밀 안전 진단까지 받은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검사가 제대로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발전소는 대한민국의 심장에 해당하는 기관산업이다. 이 전기를 만드는 심장부에 해당하는 발전소들이 연일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9월15일 늦더위로 폭발적인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인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한전측이 수요 예측을 잘못해 발생한 인재였다. 15일에는 우리나라 최대 화력발전소인 보령 화력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인해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1호기가 가동 중단되는 사고였다. 보령화력발전소의 화재는 1,2호기 연결 케이블선에서 합선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 이런 중요한 발전소에서 합선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정도라면 안전점검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인재라고 봐야 할 것이다. 16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 난지물재생센터에서 비상용 발전기를 철거하다 폭발사고가 발생해 6명의 사상자를 냈다. 난지도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이용해 발전을 하는 난지물재생센타에서 사용중단한 발전기를 해체 작업 중에 가스 밸브를 잘못 조작해 발생한 인재로 보고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발전소가 폭발하면서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핵 피해 공포로 전전긍긍 했다. 이것을 체험한 한수원 직원들의 무사안일한 근무 태도와 안전불감증에 모든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다. 이렇게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더구나 발전소장과 직원들이 이것을 숨기려고 모의 했다는 점이 직무유기로 더 큰 문제이다. 고리 1호기 근무자 전원이 사고 은폐에 가담하고 동조한 것은 원전 종사자들이 국민의 생명보호를 방조하고 국토를 방사선 오염으로부터 지키는 것을 포기하는 범죄를 공모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대한민국 도처에 안정불감증과 안전체제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 국가안보와 자연재해, 대형재난, 정보통신·항공·교통 같은 기반시설의 안전과 식품·전염병·구제역 등 민생 분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는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국가 위기관리가 전력뿐만 아니라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인 발전소의 안전 문제는 국가흥망을 걸고서 지켜야 한다. 정부는 전력을 비롯해서 각 분야 국가위기 요소들을 철저히 예방해 국민들의 안전과 산업망을 철통같이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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