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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쌍릉 등 도굴 역사와 발굴비리·조작

[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마한의 조상, 무강왕武康王(호강왕虎康王) 능을 도굴해 체포돼 전법사에 구속된 도둑이 달아났다. 정승 정방길이 전법관을 탄핵하려니 찬성사 임중연이 막으며 ‘도둑을 2년간 가두어도 장물은 없고 죽은 자도 많다’고 말했다. 정방길은 ‘나도 무덤을 파낸 자에 금金이 많다는 것을 안다. 거제도 세금을 모르게 먹은 자가 누구냐?’고 누차 욕하자 임중연은 부끄럽고 분해 병까지 생겼다. 주변 공론은 ‘정방길 말이 옳다’고 했다.“ “선화공주든 뭐든 만들어서라도 익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을 위해 당연한 것 아닌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충숙왕 16년(1329) 쌍릉 도굴사건 내용으로 도굴된 금과 관련해 전법관과 임중연 등의 배후 비리를 강력 시사한 내용이다. 뒷부분은 지역 문화관계자가 누차 필자에 한 역사왜곡이 당연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문화재 도굴과 약탈은 오래됐고, 역사왜곡 발굴비리·조작도 사건화 됐다. 도굴우려로 엄청난 공력을 들인 진시황릉도 도굴위험에 노출됐다.
조조(155~220) 묘지가 하남성에서 발견됐는데 도굴과 부관참시를 염려한 72개 가짜무덤으로 유명하다. 사실 조조도 군비조달을 위한 희대의 도굴꾼이다. 사상최초 도굴조직까지 설치한 그는 서한西漢 양효왕梁孝王 무덤에서 도굴한 금과 보물 수만 근으로 군사를 3년이나 먹여 살렸다. 항우도 진시황 무덤 도굴혐의를 받아왔다.

1868년 독일 옵페르트가 천주교탄압에 보복하고 통상을 위해 대원군 부친, 남연군묘를 도굴해 부장품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1866년 대원군의 프랑스 신부 등의 처형을 구실로 프랑스는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에 서적·무기, 금·은괴를 약탈했다. 임진·정유란과 일제강점기 이상 왜구 노략질이 극심했던 고려 말에도 도굴과 약탈이 계속됐다. '쌍릉 유물'은 일제강점기 1917년 발굴돼 금송으로 추정되는 목재 관, 토기, 치아 소량, 관장식 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쌍릉 도굴기록은 충숙왕 때 뿐 아니다. 17년 일본인 곡정제일谷井濟一이 발굴한 3년 후, 보고서에도 “대부분 유실되고(중략) 옛적 발굴돼 도제 등을 발견하는데 그쳤다. 소왕묘도 발굴흔적이 있고 옛적에 도굴위험에 처해 무슨 부장품이 있을까?”라는 논조로 기록됐다. 대왕릉 앞 청주한씨 공적비에도 “1923년 왜인이 도굴을 자행할 때 후예 ‘(한)창석‘이 매일 도굴현장을 답사해 쌍릉 주인이 (마한) 무강왕임을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최근 “무왕과 선화공주 '미륵사 창건설'은 물론 정체불명의 고문서古文書인 관세음응험기를 근거로 '익산 천도설과 백제왕도', ‘백제 말 왕궁조영‘과 ’무왕 왕궁 경영설', '쌍릉이 무왕과 선화공주릉'이라는 주장으로 핵심유적을 모두 무왕과 연결시켜 마한시대가 실종돼 역사가 훨씬 퇴보했다. ‘조선왕 기준의 마한 개국, 궁평은 마한 내궁內宮, 쌍릉은 마한 무(호)강왕 능’이라는 등 무수한 기록도 무시됐다. 1966년부터 진행된 ‘마한민속예술제’도 2004년부터 ‘서동축제’로 바뀌어 고대사가 실종됐는데 일부 사학자 주장에 지방선거 때문인지 지자체가 거꾸로 끌려간다. 특히 미륵사석탑 사리장엄의 ‘백제왕후 사탁(택)적덕의 딸‘에 대한 ’역사’ 기록에도 삼국유사 ‘설화‘와 ’사리장엄 봉안기’ 중 무왕과 선화공주에 유리한 내용만을 인용할 뿐 사탁왕후는 ‘모르쇠’다. ”역사는 실종되고 설화가 우선한다.“ 10여 차례 전쟁 대부분을 백제가 신라를 공격했는데 무슨 진평왕과 선화공주인가? 백제군사 4만명 몰살 등 수많은 전쟁에도 무왕이 사비궁 중수, 부여 왕흥사, 궁남지, 미륵사와 왕궁성과 제석사 전부를 세울 수 있었을까?

역사왜곡·조작은 92년 통영 바다에서 건진 황자총통(萬曆丙申六月日 造上 別黃字銃筒)'과 “거북선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 쏘면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驚敵船 一射敵船必水葬)'는 글까지 새겨진 발굴사기 등 적지 않다. 만들어 빠뜨려 건져낸 사기극으로 국보지정이 취소됐다.
김명환(84) 향토사학자는 “자신의 학설이 허구로 밝혀지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풍토에 바른 역사가 기대되기 어려운데 ‘08년 문화재 발굴비 수억 편취혐의로 징역형과 벌금형에 처해졌다‘고 보도된 인물이 발굴을 주도하거나 예산지원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한다.

고재홍 기자  gjh@naewo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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