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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쌍릉, 청주한씨 시조묘와 무왕릉 논란

  • 입력 2017.10.30 16:35
  • 수정 2017.10.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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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6억5천만원을 들여 대왕릉과 소왕릉을 발굴한다. ‘무왕武王을 기리는 고유제’를 지내고 “(대왕릉은 무왕·소왕릉은 선화공주라 일부가 주장하는데) ‘대왕릉 출토 치아가 20~40대 여성 것이며, 도제가 신라토기’로 대왕릉이 (거꾸로) 선화공주‘라는 견해로 피장자 문제가 제기됐다며 당사자들이 막대한 혈세를 집행해 ’객관성이 의문시‘된다. 보도자료에는 ”쌍릉가치를 재정립하고 ’백제왕도‘ 익산 정체성을 확립해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추가등재‘에 대비한다.“며 무왕릉을 당연시한다. 삼국유사 외에 전혀 기록이 없을 뿐 아니라 백제·신라 전쟁, 미륵사석탑 봉안기와 일본서기 등에서 백제 사탁(택)왕후가 명백함에도 무왕과 선화공주릉을 고집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청주한씨 족보에 ‘마한 호강왕虎康王이나 후조선 무강왕武康王과 비릉이라거나 도굴범 탈옥기록‘도 나오고 1872년 익산군 지도에 무강왕으로 기록됐으며 청주한씨는 마한 무강왕을 시조로 섬겨 쌍릉 앞에 공적비도 있다.

‘익산문화원 발행 ‘익산향토지2’에는 대왕릉에 청주한씨 ’한창교 공적비’에, ”금마벌에 마한국을 창건한 초대 ‘무강왕‘인 원왕元王에 세 아들이 있으니 휘諱(돌아가신 큰 어른 생전 이름) ’우량友諒‘은 청주한씨 원조遠祖(먼 조상)이고, 1923년 왜인이 도굴을 자행할 때 후예 ’한창석’은 매일 도굴현장을 답사해 쌍릉 주인이 ‘무강왕‘임을 확인했고 문중 ’한창교’는 ‘창석’ 증언과 고려사 및 동국여지승람 등을 근거로 왕릉복원에 착수했다. 왕릉 위토를 만드는 등 공(한창교)은 뿌리찾기에 정성을 기울여 ‘마한 개국조開國祖 무강왕릉‘을 성역화했다.”는 기록을 게재했다. 향토지는 이어 “무왕이 금마에 천도를 추진했지만 완성치 못했다. 천도를 추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백제가 망할 때 수도가 사비(부여)임은 ’역사적 사실‘로 무왕이 금마로 ’천도‘했다면 의자왕이 사비로 ’재천도‘했다는 것으로 중요사건이 삼국사기 등 어떤 사서에도 기록이 없어 금마로 천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못을 박았다. 10년 전에는 쌍릉에 청주한씨 종중에서 상석 등 석물을 설치해 익산시와 청주 한씨 종중과의 갈등이 재연된 바도 있다.

고대 도읍지는 ‘궁궐과 성곽, (왕실)사찰과 왕릉‘을 구비했다. 일부 사학계는 이런 점을 착안한 듯 왕궁성은 무왕 천도지, 미륵산성(기준성)과 익산토성(오금산), 금마 도토성(금마뒷산), 왕궁성은 성곽, 미륵사는 사찰, 쌍릉은 무왕과 비, 혹은 선화공주 능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료를 초점을 맞추어 정사이든 봉안기이든 무시하고 ’백제왕도‘ 운운하나 경주·공주·부여·익산은 4대 고도古都(옛 도시)로 지정됐을 뿐 정통사학계는 ’백제왕도’를 인정치 않는다. 핵심 유물·유적을 무왕에 맞춰 ‘마한왕도’만 사라졌다. 사탁왕후가 가람(미륵사) 발원·시주·건립자일 뿐 아니라 무왕 정실왕후로 ‘사탁선화’일 가능성이 매우 짙고 국주모國主母(나라의 주인인 어머니) 기록 등으로 신라 선화공주는 애초부터 없었다. 명백한 ‘역사’에도 삼국유사 ‘설화’만 믿고 사탁왕후를 무시하고 신라 선화공주를 고집하며 쌍릉 주인도 무왕과 선화공주라는 식이다. 설령 대왕릉이 무왕릉이라해도 ‘소왕릉은 사탁왕후’가 당연하다. 무왕과 사탁왕후는 사비에서 사망했다. 쌍릉 피장자라면 부여에서 익산까지 1백여 리를 시신을 운구했다는 말이다.

명문銘文 역사에도 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몇 가지다. 반백 년 같은 주장을 한 학설과 수많은 학·석·박사 학위 및 막대한 혈세를 들인 각종 논문과 학술발표, 강의와 세미나 등에서 주장이 허구로 드러날 뿐 아니라 ‘막대한 돈’과도 밀접하다. 신라 선화공주를 끝까지 붙든 덕분인지(?) 많은 도굴기록에도 6억4천만 원이라는 거액이 발굴비다. ‘발굴사업‘과 ’발굴직장‘이란 말도 있다. 왕궁리유적은 ’궁성을 세울 시간보다 훨씬 긴’ 28년째 발굴만 진행돼 요원하다. 30억을 들인 동탑 ‘전체복원’ 7배가 넘는 220억을 들여 서탑 ‘일부 해체·복원’은 21년만인 내년 완료된다. 괜찮은 직장이다. 서동축제도 여전히 경주 선발 선화공주다. 부여나 익산 선발 사탁왕후를 세우던가, 경주 선발 선화공주와 사탁왕후를 과도기로 무왕 양쪽에 나란히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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