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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 이성복

  • 입력 2018.02.13 09:39
  • 수정 2018.02.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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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 이성복

 

 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종일 바람이 불어 거기 아픈 사람들이 모래집을 짓고 해 지면 놀던 아이들을 불러 추운 밥을 먹이다
 잠결에 그들이 벌린 손은 그리움을 따라가다 벌레먹은 나뭇잎이 되고 아직도 썩어가는 한쪽 다리가 평상(平床) 위에 걸쳐 누워 햇빛을 그리워하다
 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아직도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다 발갛게 타오르는 곤충들의 겹눈에 붙들리고, 불을 켜지 않은 한 세월이 녹슨 자전거를 타고 철망 속으로 들어가다
 물과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벌레먹은 그리움이다 그들의 입 속에 남은 물이 유일하게 빛나다

 

누구에게나 내면에는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자리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를 목마르게 하는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지요. 그것은 죽음으로 헤어진 혈육과의 기억일 수도 있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첫사랑과의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빛도 물도 끊긴 생명 없는 내면의 어둡고 메마른 자리, 우리는 그곳에서 종일 모래성을 쌓고 허뭅니다. 충혈된 눈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안쪽, 조금씩 우리를 갉아 먹고 있는 것의 이름은 그리움입니다.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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