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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지나가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 박형준

지나가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 박형준

 

그 계절에는 발바닥에 별들이 떴다

발그레한 아이의 피부 같은,

막 떠오른 별들로 가득한 벌판에서

나는 말발굽을 주웠다

밤마다 달빛에 비춰보며 꿈을 꾸었다

벌판을 지나 하늘에 화살을 박는

말 울음소리를

벌판의 꽃들이 짓이겨진

하늘로 달려 나간 푸른 바람을

말발굽의 꽃물 범벅을

 

내 잠 속으로 향내 나는 청마가 달려오며

성운 가득 밴 냄새로 별자리를 엮어갔다

빛나는 말발굽에

쩡쩡한 겨울 하늘도

파편으로 흩어졌다

우주가 내 발바닥으로 자욱하게 몰려드는

푸른 연기로

 

그러나 나는 이미 알았다

꽃들이 어스름 속에서

추억처럼 진해진다는 것을

짓이겨진 꽃물이 사실은

어스름이라는 것을

말발굽이 놓여 있는

빛의 길목으로

지난 시절의 꿈들이 수줍은 듯

그렇게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쏘다니던 어린 시절,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던 소년은 서편으로 기우는 노을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틈에 무심코 밟고 달렸던 붉은 꽃들이 하늘로 올라가 서편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별들이 하나 둘 밤으로 모여들고, 청마가 오기를 기다리던 소년은 막 떠오른 별들로 가득한 들판에서 말발굽을 주웠습니다. 유년의 기억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말발굽을 놓아둔 빛의 길목이 어디였는지 더듬어보고 싶어집니다.

최형심 시인  ir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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