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여자
- 나금숙
그 도시의 중심에 가면 표지석이 있다
수국꽃 아래에서 여자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서고에서 갓 나온 듯 묵은 종이 냄새가 나는 여자였다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잃어버린 언어 몇 개를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넣어둔 지가 언제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디서 샀는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향기가 우물처럼 고여있는 꽃나무 아래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리키며 앉았다 가라고 했다
그녀는 내 트렁크 속에
자신이 잃어버린 언어가 있는지 아주 궁금해 했다
미래에 올 언어 같다고도 했다
소각장 가는 길을 내게 묻기도 했다
누가 다 끌어 모아다가 태워버린 것 같다고,
재가 되었어도 뒤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 도시는 길이 온통 울퉁불퉁해서 낮과 밤, 월요일과 화요일,
일상적인 시간들이 오가다가 자주 넘어지곤 한다고,
동전이 주머니에서 튀어나갈 때, 그 언어들도 튀어나갔나 보다고 했다
여자는 실은 죽어가고 있었고
잃어버린 그 언어들이 자기를 회생시키는 묘약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내가 다시 길을 물으려는데 바람에 주소를 쓴 종이가 날아가 버렸다
나야말로 이 말씀 몇 개를 찾지 않으면
오십 년 만에 도착한 이 도시에서
오늘 밤 당장 어디 묵어야 하는지 모른다
시인은 오십 년이나 걸려 낯선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익숙한 존재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한 여자와 마주칩니다. 서고에서 갓 나온 듯 묵은 종이 냄새가 나는 여자였습니다. 여자는 잃어버린 언어 몇 개를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었습니다. 이제, 시인은 표지석 앞에 서서 길에게 길을 묻습니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월요일, 화요일, …… 그리고 다시 월요일, 왜 우리는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자주 넘어지곤 하는 걸까요? 바람에 날아가 버린 종이처럼 시인은 다시 방향을 잃고 맙니다. 자신의 근원에 대해 죽는 그날까지 물어야 하는 게 인간입니다. 실존철학자들이 인간을 ‘스스로의 존재에 주체적인 관심을 지닌 존재’로 정의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