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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밤의 누드 / 박상순

  • 입력 2018.05.23 16:13
  • 수정 2018.05.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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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누드 / 박상순

 

  두 개의 둥근 달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자전거, 다른 한쪽에는 자동차, 자전거 위에는 피아노, 자동차 위에는 구름, 피아노 위에는 그녀가 다닌 고등학교 창문, 구름 위에는 그녀가 걸어 나오던 전철역 입구의 표지판, 고등학교 창문에는 오렌지 꽃물, 전철역 표지판 위에는 작은 꽃봉오리가 그려진 그녀의 가방, 오렌지 꽃물 속에는 쓴 맛이 나는 비가라드 오렌지나무, 그녀의 가방 위에는 포도주 한 병, 오렌지나무 위에는 기린 한 마리, 포도주병 위에는 새벽별.
 

  두 개의 둥근 달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겨울, 한쪽에는 봄, 겨울 나라에는 털모자를 쓴 그녀가 눈길을 걷고 있습니다. 봄의 나라에는 활짝 핀 벚꽃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눈부시게 빛납니다, 한쪽 달이 기울면 다른 한쪽의 달도 기웁니다, 봄과 겨울 사이에서 날아온 꽤 커다란, 교장 선생님 같은 나방 한 마리가 묻습니다. 뭡니까? 왜 달덩이가 두 갭니까? 마침내 내가,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순간입니다. 보세요. 납니다. 나를 그린 그림입니다. 내 손에는 두 개의 둥근 달이 있습니다.
 

  이쪽 손에는 푸른 달, 다른 손에는 하얀 달, 푸른 달 속에는 자전거, 하얀 달 속에는 자동차, 자전거 위에는 피아노, 자동차 위에는 구름, 피아노 위에는 그녀가 다닌 고등학교 창문, 구름 위에는 표지판…… 오렌지나무 위에는 기린 한 마리, 포도주병 위에는 새벽별, 겨울 나라에는 털모자를 쓴 그녀가 눈길을 걷고 있습니다. 봄의 나라에는 활짝 핀 벚꽃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빛납니다, 이렇게 내 한 손에는 푸른 달, 또 다른 손에는 하얀 달. 울다가, 울다가…… 빛납니다. 눈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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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입니다. 달은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지요. 여기, 한 개의 기억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두 개의 달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계절, 다른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두 개의 달은 같은 궤도를 돌고 있지만 서로에게 가까워질 수도 그렇다고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질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억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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