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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 김이강

  • 입력 2018.06.05 18:28
  • 수정 2018.06.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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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 김이강

 

 

방과 후에는 곤충채집을 나섰지만

잡히는 건 언제나 투명하고 힘없는 잠자리였다

 

우리는 강가에 모여 잠자리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며

투명해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익사한 아이들의 몸처럼 커다란 투명

정환이네 아버지 몸처럼 노랗게 부풀어오르는

투명 직전의 투명

 

우리는 몇 번씩 실종되고 몇 번씩 채집되다가

강가에 모여 저능아가 되기를 꿈꾸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들의 가족력이란 깊고 오랜 것이라서

자정 넘어 나무들은 로켓처럼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가

아침이면 정확히 착지해 있곤 했다

 

몇 번의 추모식과 몇 번의 장례식

몇 개의 농담들이 오후를 통과해가고

낮잠에서 깨어나면 가구 없는 방처럼 싸늘해졌다

우리에게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방과 후면 우리는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소문을 퍼뜨리고

우체부를 따라다니며 편지들을 도둑질하고

강가에 쌓인 죽은 잠자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는 드디어 형식적 무죄에 도달할 것 같았고

우리는 끝내 자정이 되면 발에 흙을 묻힌 채 잠이 들었다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침몰도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가 세상 끝 어딘가에서 착지하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린 시절, 여름은 소독차를 따라 뽀얀 연기 속을 뛰어가던 아이들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줄줄이 매단 소독차가 골목을 돌아나가면, 병든 아버지를 가진 친구가 있고 우체부가 편지를 가져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큰언니가 있던 오래된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잠자리 날개 사이로 지친 햇살이 내려올 때면 강가에 나가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몇 번의 사랑을 하고 몇 번 이별을 경험하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잡을 수 없는 투명한 날개처럼 여전히 우리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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