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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금요일의 자매들 / 조연호

  • 입력 2018.06.12 18:34
  • 수정 2018.06.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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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자매들 

- 조연호

 

가출 중인 여자애의 가짜 속눈썹은 길고 아름다웠다. 태양의 섶 아래 은백양 잎이 번데기를 달고 흔들린다. 과수원 딸년들이 모여 가난을 다 덮고도 남을 긴 주름치마를 만든다. 내 일생엔 한 장짜리 편지조차 쉽지 않다고 낭하의 여자가 말한다. 텅 빈 가지 안쪽에서 여름 내내 여름만 기다리던 그녀들의 떨켜. 금요일엔 자매들이 매화나무 그늘 아래서 황록색으로 익어간다. 여름이면 마룻바닥에 누워 빨강머리 앤에게로 영혼을 떠나보내던 흰 팔뚝 위를 개미들이 더러 걸어갔을 것이다. 자매들은 치마폭에 담아온 햇살을 다듬으며 쪽파처럼 앉아 있었다. 막내가 소리 내어 일기를 읽으면 반쯤 열린 장롱 문짝이 딱딱하고 네모난 냄새들을 꺼낸다. 엄마의 갑상선이 온도계처럼 정확히 먼지의 체온을 짚어내던 날. 느릅나무의 貧益貧이 창가를 서성인다. 가출 중인 여자애의 언니들에게 금요일이 찾아온다. 교미가 끝난 구름은 흐린 강의 상류에서 느리게 서로를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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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나른한 금요일, 소녀들이 치마폭에 담아온 햇살을 다듬으며 쪽파처럼 앉아있습니다. 긴 가짜 속눈썹을 붙이고 집을 나온 여자애들이 태양의 섶 아래서 빨강머리 앤을 읽고 있는 한낮, 막내가 소리 내어 일기장을 읽으면 햇살이 머금고 있던 웃음소리가 작은 입자가 되어 퍼져나갑니다. 성하(盛夏)의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초여름은 일기장을 읽는 소녀의 상기된 얼굴처럼, 막 번데기 단계를 벗어난 곤충처럼 설레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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