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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여름의 기원 / 문성해

  • 입력 2018.07.04 14:37
  • 수정 2018.07.0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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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기원 

- 문성해

 

누가 이 저녁에 비눗방울을 불 때처럼 잠자리 떼를 날려보내고 있나

그의 센 머리카락 사이로부터 초록의 바람이 새어나오고

그의 가장 깊은 호흡에서부터 수채물감처럼

연보라 연하늘 연분홍 이런 빛깔들이 흘러나오고

그러나 아무도 그 흘러나온 데를 되짚어갈 수 없게

발꿈치 뒤가 연하게 허물어져 가는 누가 있어

태양의 기력이 쇠한 이 저녁에

비눗방울을 불 때처럼 잠자리 떼를 날려보내고 있나

끝이 없는 끈이 날리듯 연한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계단처럼 밟고 서서 누가 우수수 목숨들을 흩어놓고 있나

무겁고 찰진 이 땅으로

잠자리 하루살이 애기똥풀 같은 거품 같고 물 풍선 같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나

데리고 와서는 뒤는 돌봐주지도 않고 그냥 떠있다 사라지게만 하는가

몸엣것들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어깨근육만으로 떠있는 그들에게

누가 하늘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목숨이 목숨 같지 않은 이들이 가장 가볍고 명랑한 무게로 떠다니는 이 저녁에

나도 하늘거리는 얼굴을 들고 누가 이 허공에 떠다니게 하는가

저 앞에 흔들리며 오는 목숨들을 향해 미소짓게 하는가

비눗방울을 불 때처럼 누가 내 목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가

누가 내 목구멍 속으로 묽은 잠자리 떼를 흘려보내고 있는가

엷은 장이 끓는 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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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를 막 지나왔습니다. 이제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한낮의 햇빛을 통과하는 잠자리의 날개는 나날이 투명해질 것입니다. 저녁이 오는 마당에서 비눗방울을 불면, 비눗방울 속으로 사라지는 잠자리 떼를 따라 머리가 센 남자가 가장 깊은 호흡을 토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여름 속으로 저녁이 올 때, 남자의 발뒤꿈치는 연하게 허물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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