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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상한 그늘 / 최호일

  • 입력 2018.08.04 19:11
  • 수정 2018.08.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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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늘 

- 최호일

 

  양산을 쓴 여자가 그늘을 끌고 간다 발로 배를 걷어 차버린 강아지처럼 따라 간다

  그늘은 말이 없고 성실하다

 

  양산을 썼기 때문에 태양에 가장 가깝게 걸어간 그늘 같다 뜨겁고 무덥고 무겁고 다리가 있어 오래된 뼈와 살로 만들어진 그늘 같다

 

  천변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침을 뱉듯 꽃이 피었다 꽃은 참을성이 없고 당신은 태연하다 나무 계단의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변두리 짜장면을 먹으러 오르는 사람은 무겁다

 

  저녁이 오는 쪽으로 사람들은 죽고

  여우가 여러 번 울어서 밤이 오면, 아무도 그것이 어둠을 열고 사라진 검고 이상한 사람인 줄 모른다 그늘이 조금씩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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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아래 양산을 쓴 여자가 그늘을 끌고 갑니다. 그늘은 늘 말이 없고 성실합니다. 그늘은 여자와 함께 있지만 여자의 반대편에 속해있는 이상한 존재입니다. 그늘이 속해있는 불투명하고 어두컴컴한 세계는 이성(理性)의 빛이 닿지 않는 주술적이고 마술적인 힘이 작용하는 곳. “검고 이상한 사람”은 조금씩 이 세계를 먹어치우더니 어느 순간 어둠을 열고 사라져버립니다. 무한한 미학적 가능성을 가진 또 하나의 세계가 우리의 발아래 존재한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됩니다.

-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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