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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드라이아이스 / 김경주

  • 입력 2018.08.08 16:37
  • 수정 2018.08.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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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아이스 

- 김경주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꼈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 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 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귀신처럼.

 

* 고대 시인 침연의 시 중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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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드라이아이스가 닿은 그 짧은 순간,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누구라도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외로움의 다른 말입니다. 어쩌면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외로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을 때도, 누군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때도, 외로움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라는 문구는 드라이아이스만큼이나 서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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