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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가족사진 / 최라라

  • 입력 2018.08.20 20:45
  • 수정 2018.08.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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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 최라라

 

   큰 오빠 국민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한다 다섯 형제가 엄마 앞에 차례로 섰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는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엄마 등에 업혀있다 오래전 죽은 엄마의 고무신은 아직도 하얗다 오십도 안 돼 죽은 둘째오빠는 키가 다 자라기도 전이다 참 잘 웃고 있다 아픔이라고는 없는 배경이다 슬픔이라는 단어는 배우지도 못한 종아리들이다 그 때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고통의 새하얀 핏덩이는 그 때 어디서 자라고 있었을까 죽음이라는 솜털 뽀송한 씨앗은 누구나 보았다던 사랑은 어느 구름위에 있었을까 집도 없이 떠돌았을 행복은 막내 오빠의 꼭 다문 입 속도 거쳐갔을까 나는 없는 내 사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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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 앞에 가지런히 모여 있는 다섯 형제들…….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 어느 화창한 날의 운동회 풍경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시립니다. 시간이 앗아가 버린 어머니는 사진 속에서 새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습니다. 채 반세기도 못살고 떠난 혈육은 키가 다 자라지도 않은 작은 몸으로 사진 속에서 웃고 있습니다. 아직 하나의 점도, 아무것도 아니었을 나는 세월이 흘러 내가 오기 전의 그 시간 속에 나란히 서있는 그리운 이들을 봅니다. 사진 속의 누군가는 떠나고 그 사진에 없던 누군가는 살아서 그 시간을 들여다본다는 것…….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죽음의 씨앗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 올려야만 하는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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