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영찬의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 입력 2018.08.30 08:57
  • 수정 2018.08.30 17:05
  • 댓글 0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김영찬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플라톤의 생각이 달랐겠지

삼각형 건물이 난세에 판을 치거나

골치 아픈 삼각형공리가

수시로 바뀌겠지

 

자동차 바퀴가 생각할 줄 안다면, 운전수는 곤혹스럽겠지

제발 좀 가자는 데로 가자!

타이어가 닳지 않는 곳으로만 굴러가겠지

 

담뱃불이 생각할 줄 안다면, 애인 있는 애연가는 애가 탈 것

담배연기가 눈을 찔러

새 애인이 등 돌린 뒤 본의 아니게

연막(煙幕) 친 길

 

우산이 생각할 줄 안다면, 비오는 날들을 더 많이 만들겠지

우산 속에 젖지 않을 것들만 모여들고

우산 밖에서 불빛은 꺼지겠지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글쎄 좀 큰일이야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닌 지구는 삼각형을 유지하려고

찌그러진 지구본이

바다로 떠난 배들을 대양의 꼭짓점 위로 내몰겠지

삼각뿔처럼 뾰쪽뾰쪽 허리가 아파도

주어진 대로 살 수밖에

누구한테 함부로 개떡 같은 삼각형 세상이 싫다고

투덜투덜 모서리 진 세상을

비난하겠어?

 

———

*“만일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그(삼각형)는 틀림없이 神을 삼각형으로 그릴 것”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삼각형이나 담배 혹은 바퀴가 생각이란 걸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 도발적인 상상 속에는 뼈가 들어있습니다. 이 작품 "삼각형이 생각할 수 있다면"은 철학서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얻은 시라고 합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 섬기는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고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유한 의지를 가진 모든 것은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편한 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제가 가진 모난 세계 안에 타인 혹은 세상을 가두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세계와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나 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놓치면 후회할 이시각 핫이슈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