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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발해로 가는 저녁’ / 정윤천

  • 입력 2018.09.06 02:35
  • 수정 2018.09.0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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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로 가는 저녁 

-정윤천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 몸으로 치러 냈으나 재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는 하였다

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발해로 가는 저녁은 사방이 아직 어두워 있었다 산협들을 연거푸 벗어나자 곤궁했던 시절의 헐한 수라상 위의 김치죽 같은 새벽빛이 차창 위에 어렸다가 빠르게 엎질러지고는 하였다 변방의 마을들이 숨을 죽여 잠들어 있었다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옛 해안처럼 길었고 발해는 거기 눈을 감고 있었다 발목이 물새처럼 가늘어 보여서 마침내 발해였을 것 같았다 사직을 닫은 해동성국 한 구가 아직 닿지 않은 황자나 영애들보다 서둘러 영구차에 오르자 가는 발목을 빼낸 자리는 발해의 바다 물결이 와서 메우고 갔다 발해처럼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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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나라, 지도에도 없는 나라, 그렇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가야하는 나라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 낯선 나라로 떠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발해로 가는 저녁, 사방은 어두웠고 변방의 마을은 숨죽여 잠들어있었습니다. 수라상 위의 김치죽 같은 새벽빛이 차창 위에 어렸다가 빠르게 엎질러지는 새벽을 지나서야 아들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비보를 듣고 달려간 그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해안처럼 참으로 길었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 발해의 바다 같은 눈물이 밀려와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를 메우고 갔습니다.

 

-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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