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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수선화칸타타 / 강재남

  • 입력 2018.09.11 20:29
  • 수정 2018.09.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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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칸타타 

-강재남

 

그러니 사랑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오지 않습니다 창백한 꽃대 흐드러진 호숫가를 기억하는 건 사라진 당신의 최초입니다 최초는 당신의 당신이 당신과 공존하는 곳입니다 우울의 시간이 자라는 것은 최초 이전의 일입니다 신화는 일시에 사라지는 환영입니다 어린잎이 기지개 켤 때마다 이슬이 신발을 벗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노란 뜰이 깊은 봄으로 꿈틀거리는 배경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그러니 사랑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기억하는 건 기억을 망각한 당신의 오류입니다 광막한 물속은 즐거운 곳입니까 싱싱한 아침 해가 물음을 던집니다 당신을 들여다보는 당신은 환상입니까 실재입니까 신발을 벗은 이슬을 오늘 주검으로 만나고 내일은 오늘의 이슬을 만날 것입니다 당신이 물속으로 얼굴을 담급니다 저에게 엎드려 새벽기도를 강요하지 마십시오 구름너울이 하늘을 덮습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마십시오 애당초 물의 요정이었다는 말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날지 못하는 날개를 가졌다는 건 감당 못할 상실입니다 축축한 발바닥을 가진 당신은 오래 행복하십시오 당신이 당신을 기억해야하는 일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밤이면 잠시 그림자를 벗었다가 아침이면 꺼내어 입는, 그것조차 잊어주십시오 깊은 봄 호숫가를 창백하게 물들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당신은 언제라도 숙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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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사로잡을 만큼 잘생긴 미소년이었던 나르키소스(Narcissus)는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하지요? 수선화에 얽힌 이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애)입니다. 나르시시즘은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감정이지만 때로 스스로를 파멸시키기도 하는 무서운 감정이기도 합니다. 자기에 대한 과한 애정과 확신은 작은 고난에도 감당 못할 상실감을 가져와 내가 나와 공존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나 자신조차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자신이 없는 나는 참 가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인간 존재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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