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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국화지(菊花池) / 고경숙

  • 입력 2018.09.20 22:59
  • 수정 2018.09.20 23:02
  • 댓글 0

국화지(菊花池)

- 고경숙

 

화선지에 살짝 낚싯대를 드리워

농담(濃淡)을 조절해보세요

저녁이 느리게 번져와요

바람이 대숲을 건드려 붓질을 하면

한 송이 국화로 피는 수상좌대

목뼈가 저리도록

물속에 코를 빠뜨리고 있는 저 남자

 

먹물방울로 맺힙니다

고개 돌려 술 한 잔 건넬

벗 하나 없는 저녁,

고인 저수지의 울음은 슬픈 여자를 닮았어요

국화꽃잎 하나씩 떼어내 물에 떨궈요

갈기갈기 부숴지는 물을 보세요

물고기로 化한 꽃잎의 기억들이 요동치네요

조사(釣師)들은 원래 곁눈질을 안 하지만

수작 부리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저 남자, 월척은 그른 것 같네요

어둠이 저수지에 덧칠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동침하는 꽃방엔

국화향 가득 물안개로 피어오르는걸요.

 

 

*국화지: 강화도 강화읍 국화리에 있는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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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대숲을 흔들어 붓질하는 가을, 저녁하늘이 내려와 번지고 있는 저수지는 한 폭의 수묵화를 닮았습니다. 그곳에 한 송이 국화 같은 남자가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목뼈가 저리도록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의 눈에서 검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집니다. 저수지 수면에 내려앉은 하늘이 이내 부서집니다. 울음이 물안개처럼 차오르는 사이, 어둠이 와서 남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어둡게 덧칠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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