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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
  • 기자명 이수한 기자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예인인생 60년 생애 첫 독주음반 <김덕수 장구산조> 발매

  • 입력 2018.09.27 20:42
  • 수정 2018.09.2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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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이수한 기자=사물놀이 창시자이자 장구 명인 김덕수가 2018년 10월 독주음반 <김덕수 장구산조>를 발매한다. 1978년 사물놀이을 통해 한국 전통연희의 파격적 변화를 이끌어 왔던 김덕수는 전통 음악의 폭넓은 세계화와 대중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 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예인이다. 재즈그룹 레드선, 류이치 사카모토 등 전 세계 음악의 거장들과의 협업, 힙합 장르와의 파격적인 무대 등 매 순간 한국 전통장단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여 왔던 김덕수가 2007년 이후 11년만에 대중들 앞에 내놓는 이번 음반은 그의 생애 첫 독주음반이기도 한 <김덕수 장구산조>이다.  

일반적으로 ‘산조(散調)’라 함은 한국의 전통 기악 독주곡을 말한다. 19세기 무렵 김창조에 의해 가야금 산조가 창시된 이래 음악적 변모를 이루며 오늘날에 이른다. 느리게 시작하여 빨라지며, 기경결해(起景結解: 시작해서 달고, 맺고, 푸는)의 구조로 이어지는 음악적 흐름으로 연주자 개개인의 즉흥성과 창조성, 역동성이 돋보이는 한국의 전통음악 장르이다. 구전심수로 전해지는 도제식 교육 방법에서 벗어나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악보를 통해 학습되기 시작한 후부터는 즉흥성보다는 형식의 미를 갖춘 음악으로 변화하였고,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겨나면서 전승 계보를 통해 향유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가야금 외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아쟁 등 각 악기별 연주의 정교함과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산조에서 장구는 반주악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에 장구가 완벽히 독립된 독주악기로서 발전 또는 변모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있다. 김덕수는 반주악기였던 장구에서 독주악기로서의 가능성과 매력을 발견한다. 또한 산조가 기악 독주곡이라는 의미에서 더 확장된 형태로 변화되고 발전되어야 하고, 그러한 흐름에 맞추어 한국 전통장단의 즉흥성과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음악을 새로이 풀어나가야 한다고 여긴다. 김덕수의 생애 첫 독주음반인 <장구산조>가 이러한 변화의 구심점이 되고자 한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무속장단을 중심으로, 다른 하나는 농악장단이 그 것이다. 무속장단의 경우 경기도당굿과 진도씻김굿의 가락을 중심으로, 농악장단의 경우 경기, 영남, 호남의 농악가락을 중심으로 연주했다. 그러나 기존 산조의 음악적 흐름과 같이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으로 나열하여 구성하지는 않았다. 장단과 장단 간의 관계성을 중시하였고, 장단 간의 호흡과 장단의 흐름이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몰입될 수 있도록 연주했다. 단순히 김덕수가 연주할 수 있는 가락을 선보인다는 생각보다는 장구산조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한국 전통장단의 역동성과 강렬함의 매력을 전달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한국의 다채로운 전통 장단. 한국 전통장단이 가진 생명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김덕수 장구산조>는 CD와 LP, 음원으로 발매된다. CD 및 LP는 10월 1일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하여 CD는 10월 19일, LP는 11월 15일 이후 받아보게 될 예정이다. 특히 LP의 경우 300매 넘버링 한정판으로 출시되어 소장가치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되는 <김덕수 장구산조>. 재일 교포를 중심으로 한 사물놀이 단체 활동이 활발한 일본에서 1,600여개의 지점을 보유한 츠타야 서점과 타워레코드를 비롯한 주요 음반 판매처에서 CD 및 LP가 판매된다. 또한 사물놀이 탄생 4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장에서도 11년만에 발매된 김덕수의 새로운 음반을 구매할 수 있다.

◆장구, 그리고 장단이 삶 그 자체인 장구명인, 광대의 사명을 매 순간 아로새기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예인 김덕수

남사당패였던 아버지 김문학 손에 이끌려 5살 때 남사당패 무동으로 조치원 난장 전통연희 무대에 데뷔한 명인 김덕수, 그는 무려 7살 때 전국농악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어릴 때부터 전국을 유랑하며 재주를 자랑했던 예인이다. 22살 때 민속가무예술단 단장이 되어 세계 각국을 돌았고 1978년 2월, 꽹과리와 징, 장구, 북 네 종류의 타악기로 구성된 풍물패 ‘사물놀이’를 창시하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 무대까지 섭렵한 사물놀이는 창시된 이후 40년 간 세계 50여 개국에서 사물놀이 팀이 만들어 지고, 미국 대학의 경우 200개가 넘는 팀이 생겼으며, 영국 더럼대학 음대에서는 정식과목으로 채택되는 등 전통 음악의 폭넓은 세계화와 대중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열린 광장에서의 시각적 놀이였던 풍물연희를 실내 무대의 음악으로 탈바꿈시켜 명맥을 잃어가던 전통 연희에 새 숨결을 불어넣은 김덕수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광대의 사명이라 여기며, 우리 리듬이 가진 신명을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지속해 나가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연희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던 김덕수. 전통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기에 ‘날마다 새로워지리라’는 전문 예인 정신을 올곧게 지켜나가고자 매 순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이 시대 예술인들을 향한 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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