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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안현미의 ‘실내악’

  • 입력 2018.10.02 22:47
  • 수정 2018.10.0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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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 

-안현미

 

봄이 오는 쪽으로 빨래를 널어둔다

살림, 이라는 말을 풍선껌처럼 불어본다

옛날에 나는 까만 겨울이었지

산동네에서 살던,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던

실패하고 얼어죽기엔 충분한

그런 무서운 말들도 봄이 오는 쪽으로 널어둔다

음악이 흐른다 빨래가 마른다

옛날에 옛날에 나는 엄마를 쪽쪽 빨아 먹었지

미모사 향기가 나던 연두, 라는 말을 아끼던

가볍고 환해지기엔 충분한

살림, 이라는 말을 빨고 빨고 또 빨아

봄이 오는 쪽으로 널어두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난과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시련의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실패와 좌절이라는 무거운 말들을 빨아 봄이 오는 쪽으로 널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추웠던 삶의 시간들이 음악에 젖는 동안 빨래는 말라갑니다. 저편의 봄날을 기다리며 젖어있던 자리가 환하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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