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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이 있는 집 / 박성현

  • 입력 2018.10.10 14:22
  • 수정 2018.10.10 14:24
  • 댓글 0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이 있는 집

 - 박성현

 

한쪽 담이 움푹 꺼졌다 무릎까지 자란 잡초 옆에 새똥이 무례했다 똥을 눈 새는 기웃거리다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 뒤로 사라졌다 속초의 무거운 바닷바람을 이고 있는 기와에서 묵은 눈이 녹았고 가끔 해가 기우는 곳을 향해 늙은 개가 짖었다

*

날짜 지난 신문을 읽다가 바싹 말라버린 잉크에 코끝을 댄다

희미한 냄새지만 그곳에 ‘영원’이 있다

*

두툼한 늦겨울 안쪽에 몸을 밀어 넣었다 내가 읽은 날씨는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사라져버렸는데, 혀에 닿을 때마다 나는 몹시 기울어지며 출렁거렸다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을 밀어내며 잡초가 맹렬히 일어섰다

*

매화가 터지기 직전에는 얼음투성이 손가락도 뜨거운 납을 삼킨 듯 고통스러워진다 지금 나는 속초의 밤 한가운데 열일곱 개의 나무계단을 내려와 다시 거대한 해일 꼭대기로 간다

*

잠든 당신 곁에

희고 간결한 새 한 마리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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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빛바랜 풍경 안에는 버려졌지만 영원의 일부분로 편입된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낡은 신문 속에 남은 기록들처럼 말입니다. 누군가 폐허가 된 옛집 계단을 내려와 무거운 바람을 이고 한겨울과 마주합니다. 모든 생명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 바람이 일어나 누워있는 잡초들을 맹렬히 세우고 갑니다. 낡은 지붕 위 눈이 녹고, 어디에선가 눈꽃을 뚫고 매화가 피고 있겠죠. 영원에 편입된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생명 사이에서 늙은 개가 짖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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