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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기림의 ‘길’

  • 입력 2018.11.20 11:54
  • 수정 2018.11.20 11:55
  • 댓글 0

-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덕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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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길 위에 서있습니다. 소년은 그 길 위에서 어머니도 잃고 첫사랑도 잃었습니다. 그는 자주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 노을에 젖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강에서 돌아와 어두워진 마음 때문에 몸서리치던 날이면 어김없이 감기를 앓았습니다. 그 강가에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여러 번 다녀간 뒤, 이제는 어른이 된 소년이 늙은 버드나무에게로 돌아와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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