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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박이도의 ‘회상(回想)의 숲 1’

  • 입력 2018.12.12 16:15
  • 수정 2018.12.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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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의 숲 1 

- 박이도

 

내 회상(回想)의 숲속엔

이제 아무도 거닐지 않는다

밤바다에 닻을 내린

목선(木船)의 꿈처럼

뒤척이는 물소리에 사라진

내 어린 그림자의 행방을

이제 아무도 모른다

 

조그만 손으로 눈을 가리고

호랑이 흉내를 하던 나의 과거(過去)를,

옥수수 대로 안경을 만들어 끼고

신방(新房)을 차리던 볕바른 토담에

까치옷과 부딪쳐 눈물 흘리고

나의 생가(生家)를 둘러선

밤나무 숲속에서

가슴 조이던 유년시대(幼年時代)

 

내 사랑의 싹이 움트고

내 지혜의 은도(銀刀)가 빛나던

밤나무 숲속,

새들의 노래는 퍼져가고

노을 속에 물드는 강물의 꿈은

멀리 멀리 요단강으로 흘러가듯

그때 발성(發聲)하던 내 목소리를

이제 누가 기억(記憶)하고 있으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는 일이 힘들 때, 되돌아가고 싶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유년 시절, 첫사랑과 함께했던 젊은 날, 단꿈에 젖어 있던 신혼의 날들……, 주로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던 시절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행복한 시절이 있다면 유년 시절일 것입니다.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아직 좌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일도 없었고, 고달프게 돈을 벌 필요도 없었던 시절……. 종일 호랑이 흉내를 내고 옥수수 안경을 쓰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던 시절……. 내 안에서 서서히 싹트고 있던 연한 꿈들과 만나느라 매 순간 황홀했던 시절……. 그 모든 것들이 가슴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회상의 숲에 아직도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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