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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김왕노의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이번에 또 놓치고’

  • 입력 2018.12.18 13:11
  • 수정 2018.12.1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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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이번에 또 놓치고 

- 김왕노

 

그때, 내가 담배를 한 대 태워 물고

가을의 하늘을 건너가는 철새를 바라볼 때였을까.

아니면 화장실에 간 사이 핸드폰을 받는 사이

일은 그런 사소한 것에서 털어져버리는 것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그렇게 또 놓쳐버린 것

 

기차에 내가 올라 챙겨야 할 가을과 가을의 편지와

가을의 쓸쓸한 문장과 이별이

머위 잎같이 푸른 머리를 창가에 기대고 조는데

벌써 나를 지나쳐 전생과 후생의 터널을 지나며

기적 소리나 울리는데

 

내가 잠깐 한 정치인을 두고 열 받아 있을 때

이성을 잃고 분노로 주먹을 파르르 떨 때

아니면 환한 수국 꽃에 취해 있을 때

따지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내가 목숨 거는 사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그런 틈을 노려 가버리는 듯 영영 가버려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또 놓쳐버려

내가 먼 훗날 도착할 내 후생을 지나 기차는 또 어디로 향하는지

철길은 은하계를 지나 또 어디로 뻗어 있는지

내 애간장을 끊어놓으며 들려오는 저 기적 소리

저 철거덕 기차 바퀴 소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생이 너무 지루하다고 느낄 때면, 혹시 내가 방금 잠시 졸고 있는 사이에 전생의 연인이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닌지, 아까 한심한 정치인을 욕하느라 놓친 기차에 혹시 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사람이 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공상에 빠진 적 없으신가요? 우리의 상상 속에선 왜 소중한 것들은 그런 틈을 타서 우리를 비켜 가는 것일까요? 혹시 사소한 것에 열정을 낭비하지 말라는 내면의 경고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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