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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칼럼> 사리장엄 발견 10년, 실종된 사택왕후

  • 입력 2019.01.08 16:34
  • 수정 2019.01.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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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국장 고재홍

[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국보11호 미륵사지西석탑 사리장엄 발견 10주년이다. 타지에서는 사리장엄 봉영(봉안) 주체이자 발원자 및 봉안자, 가람(미륵사) 최대 시주자로 미륵사 건립자인 사택(탁)왕후 관련 연구논문이 많이 나오나 정작 익산과 전북은 사택왕후에 대해 10년째 언급이 없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

기기묘묘하다. 사리장엄 복제품과 사리를 다시 봉안한 후, 석탑 해체·복원이 준공을 앞두었고 사리장엄으로 추진된 국립익산박물관이 건립 중이나 정작 사택왕후는 거론조차 안한다.

반면, 신라 진평왕 셋째 딸 선화공주가 사실인 양 거론된다. “익산과 전북은 설화도시인가, 역사도시인가?” 올해는 특히 기해년으로 봉안 23주갑周甲(1380주년周年)이다.

수십 년 간 지역사학계는 신라 선화공주 삼국유사 설화를 근거로 무수한 석·박사 학위와 연구논문 및 강연·토론회 등이 이뤄졌다.

수많은 학위와 논문 및 학술발표회 등이 허구로 끝날 것이기 때문인지, 사리장엄 명문이 나오자 지역 사학계는 “무왕이 왕후와 후궁이 한두 명이겠는가?”라며 선화공주와 사택왕후를 별개 인물로 잽싸게 간주했다. 사택왕후를 언급조차 안하는 것은 ‘자기부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百濟王后佐平沙乇積德女(백제왕후는 좌평 사탁적덕의 딸)과 能謹捨淨財造立伽藍以己亥年正月卄九日奉迎舍利(능히 깨끗한 재물을 희사해 가람(미륵사)를 만들어 세우시고, 기해년(639) 1월29일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는 명문에도 말이다.

왕후 앞에 국호가 붙어 정실왕후임을 반증하고 희사한 재물로 미륵사를 세웠다는 기록에도 선화공주를 별개 인물로 만들어야 수십 년 주장이 허구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까? 선화공주가 별개 인물이어도 사택왕후가 미륵사 발원·시주·건립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사리장엄 발견 전 “1층까지만 해체하고, 기단부는 해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부 주장에 그간 석탑 유물 발굴을 근거로 “기단부 중앙에 1300여 년 전 선조 유물이 남겨졌을 수 있으므로 완전 해체 후 복원해야 한다”는 기사를 누차 게재했다. 2009년 1월 14일 특이하게 석탑 1층 심주석에서 금제사리봉영기, 금동제사리내호 및 외호 등 9,900여점 사리장엄구와 불사리 13과가 발견돼 미륵사 창건과정과 시기, 백제역사와 위상, 사리봉안 의례 등을 알 수 있는 백제최대 발굴성과다. ‘공주 무령왕릉’ 및 ‘부여 금동대향로’와 함께 백제사를 다시 써야 할 중요 유물이다.

그 해 1월 19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김봉건 문화재연구소장이수백 명 언론인과 주민 등이 몰려든 가운데 발굴과정 설명과 일문일답을 하는 등 유물이 쏟아진 사실을 미륵사지석탑보수정비사업단에서 공개했다. ‘사탁(택)’은 당시 백제 8대 성姓 하나다. 193개 글자 ‘사리봉안(영)기’는 석탑은 물론 미륵사 창건내력을 증언하는 유물로 백제 무왕 재위 40년인 서기 639년 백제(사택)왕후가 ‘왕실과 무왕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사리를 봉안했다고 기록돼 가람과 석탑 창건 목적과 시기가 명백해졌다.

심지어 사리장엄 복제품과 사리, 석탑수리기, 불교계 발원문 등 11건 1,051점을 2015년 12월 도지사와 불교계 인사 등이 참여해 다시 봉안했음에도 정작 최초 발원·봉안·시주 및 미륵사 건립 주체인 사택왕후는 애써 10년 째 무시한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할 수 없는 처신이다. 오히려 서울·공주·부여 등 타지 역사가들이 사택왕후에 관한 논문 등을 활발하게 발표한다. 봉안 640년이 다시 흘러 고려 말 일연 스님이 극히 적은 사료와 구전을 통해 저술한 삼국유사만 믿고 신라 선화공주만 줄기차게 거론한다.

잘못된 학설에는 자기부정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학자다. 특히 역사학자는 ‘진실’이 생명이므로 명문의 역사를 설화로 덮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칫 공주나 부여에서 사택왕후를 전면에 내세우면 사택왕후까지 뺏길 수 있다.

사리장엄 발견 10주년을 맞아 외지에서 기기묘묘한 상황으로 본다는 것을 지역 사학계와 익산시가 인식해야 할 때다. “사택왕후가 후손들의 어리석음에 지하에서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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