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정면
- 박지웅
명수우물길에 사는 아낙은
소리에 이불을 덮어씌우고, 한다
그 집 창가에 꽃이 움찔거리면
어쩔 수 없이 행인은
아낙이 놓은 소리의 징검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야 한다
생각지도 않은 오후,
악다물고 움켜쥐다 그만 놓쳐버린
신음과 발소리가 딱 마주친다
아, 서로 붉어진다
소리의 정면이란 이렇게 민망한 것
먼저 지나가시라
꽃은 알몸으로 창가에 기대고
나는 발소리를 화분처럼 안고
조용히 우물길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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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참 난감한 상황이네요. 우물길에 사는 아낙이 대낮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길 가다 뜻하지 않은 소리와 맞닥뜨리게 된 행인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죄인처럼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지나갑니다. 길가의 꽃들처럼 붉어진 얼굴로 발소리를 화분처럼 조심스럽게 안고 가는 행인의 마음 씀씀이가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