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곶 해안
- 박정대
고독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생의 밑바닥
그곳에서 횡행(橫行)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렇게 넓은 황량함이 내 고독의 터전이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다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 속에서
촛불을 들고 걸어가던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 해안에 가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 견고한 생
백령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곳에선
흰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이곳에서 그대는 그대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또 다른 생의 긴 활주로를 하나 갖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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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의 빈 자리는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야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법입니다. 이 시의 화자처럼 고독의 끝자락까지 밀려나는 견고하고 막막한 고통을 맛본 후에야 비로소 떠나간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고독이 아무리 깊다 해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랑에 관한 문학작품이 애도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