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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전북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리, 되찾아 와야

  • 입력 2019.04.03 15:30
  • 수정 2019.04.15 12:06
  • 댓글 0

한국 최초 진신사리
5과로 추정되는 영주부석사3층석탑 봉안 외 왕궁탑 봉안여부도 몰라
전체 16과로 추정될 뿐 왕궁탑 봉안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
‘사리 없는 석탑이나 사리장엄 헛 껍데기’

 

[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1965년 국보289호 왕궁리오층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이 국보123호로 지정돼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국립익산박물관이 연말께 준공되면 익산으로 이관 협의가 끝났으나 정작 사리舍利일부가 영주부석사 3층석탑에 봉안돼 안내판에 적혀있어 사리를 되찾아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작고한 국내 사학자들이 왕궁리석탑 해체를 맡았는데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영주 부석사 석탑에 봉안됐는가도 문제이고, 왕궁리석탑에 나머지 사리가 봉안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 기록이 없어 사리가 없을 수도 있고, 3의 장소에 넘겨질 수 있어 진상파악이 절실하다.

 

익산 금마출신 향토사학가인 이금용(61)씨와 필자 취재에 의하면, 왕궁리오층석탑은 작고한 동국대 황수영 교수와 역시 작고한 단국대 정영호 교수 등이 주축이 돼 1965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됐다.

 

여기에서 발견된 은판에 금강경을 새기고 금도금을 한 금강경판금제사리함및 금동제사리함, 유리로 된 사리병등이 국보123호로 지정돼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으로 연말께 국립익산박물관이 준공되면 익산으로 이관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리함 내부 사리병에서 나왔다는 부처 진신사리真身舍利16였고, 이 중 5과가 영주 부석사 3층석탑에 분과分顆돼 봉안됐으며 나머지는 왕궁탑에 봉안됐을 것이라 미뤄 짐작할 뿐기록이 없어 실제 봉안 여부나 봉안된 숫자도 알 수 없다.

 

또한 영주 부석사 3층석탑 안내판에는 부석사에서 2m 떨어진 옛 절터에 남아있던 두 탑으로 1966년 부석사로 옮겨 세웠다. 탑을 옮길 때 세운 비석에 의하면 서쪽 탑은 국보289호 왕궁리오층석탑에서 나누어 온 사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고 버젓이 기록됐다.

 

특히 1965년 왕궁리 사리기는 유물정보 확인결과, 1970년 국립박물관으로 입수돼 사리장엄구만 국가로 귀속됐을 뿐 현재까지 16과로 알려진 전체 사리 행방은 묘연하다.

 

전북도나 익산시 관계자도 부석사 외 나머지 사리는 왕궁리석탑에 봉안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 정확한 봉안 여부나 숫자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고 밝혀 전혀 봉안되지 않을 수도 있고, 3의 장소로 흩어졌을 수도 있어 정확한 진상파악이 절실하다.

 

이금용 씨는 왕궁리오층석탑 사리는 현존 사리 중 국내최초로 들어온 진신사리로 평가되는데 무슨 권한과 절차를 거쳐 영주 부석사에 가 있으며, 나머지 행방은 어떠한지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사리장엄구나 석탑도 중요하지만 '사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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