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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최금진의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해설

  • 입력 2019.04.08 17:11
  • 댓글 0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  최금진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십만년 전에

나는 원숭이 비슷한 우리 할아버지 고환에 담겨

말하는 꽃도 보고 텔레파시 하는 뱀도 보고

움막에서 어멈들이 어, 하면 아범들은 아, 하면서

낮이고 밤이고 인류를 길어올려 흘려보냈겠지

내 본향이 아프리카라 생각하니

평소 안 좋아하던 파프리카도

적도에 걸린 생소한 탄자니아, 소말리아도 예뻐 보인다

나는 얼마나 멀리 흘러온 건가

얼굴 시커먼 우리 할아버지는 긴 막대기랑 돌덩이 서너 개 들고

얼마나 오래 걸어 전라남도 화순에 와서 화순 최씨가 되었던 걸까

내 이름을 스와힐리어로 뭐라 할까

우리는 형제니까

아동복지기금도 내고 기아 난민도 돕고

아프리카에 호적을 두었으니

나도 늙으면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어쩌면 신께서 철조망을 쳐놓은 성경의 에덴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십만년도 더 먹은 우리 할머니가

축 늘어진 가슴을 출렁이며 날 알아보고는

나를 무릎에다 눕히고 자장가를 불러주실까

이 세상에 없는 새의 언어로, 나무의 모국어로

아프리카, 아프리카, 너무 늙은 나를 안고 안타까워해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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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유인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실 조금 실망했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검은 얼굴과 털이 숭숭 난 짧은 다리가 지금의 제 모습과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가끔씩 머나먼 아프리카 땅을 떠나서 수 세기 걸려 유라시아 대륙 끝까지 온 대단한 조상들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그들에게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내 몸속 DNA가 “이 세상에 없는 새의 언어로, 나무의 모국어로” 속삭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로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세상이 왔어도, 이상하게 아프리카만은 아주 멀게 느껴지는 데에는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는 시간적 거리가 아프리카와 나 사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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