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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규리의 ‘여름 신림동’ 해설

  • 입력 2019.04.16 11:17
  • 댓글 0

여름 신림동

- 이규리

 

다섯 평을 견디는 낮과 밤들아

너무 애쓰지 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한 방향으로 앉아

꿈을 버렸느냐 그런 건 묻지 않는다

골목마다 반바지와 슬리퍼가 나오고

저 발들이 길을 기억하게 될는지

비참하지 않기 위해 서로 말을 걸지 않는데

그게 더 비참하단 걸 또 모르는 척한다

더위 정도는 일도 아니야

다섯 평을 견디는 이들은

세상이 그들을 견디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신림동은 산다 하지 않고

견딘다 한다

그래서 골목이 숨어라숨어라

모서리를 만들어 준다

나도 이곳에 편입해

순두부 알밥 부대찌개 사이 모서리를 돌 때

목이 메여

자꾸 목이 메여

목을 맬까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본 선명한 장면이 잊히지 않아

한쪽 발에만 간신히 걸려 있던 삼선 슬리퍼

이건 끝을 모르는 이야기

갈매기처럼 한 곳을 향해 혼자 밥 먹던 이들아

슬퍼하지 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말없이 사라진 슬리퍼 한 짝처럼

슬리퍼조차 떠나간 빈 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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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쇠락의 길로 들어선 신림동, 한때 그곳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바쳐 출세를 꿈꾸던 고시의 메카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언제 붙는다는 보장도 없는 시험을 위해 어두운 고시원 구석에서 수없이 많은 청춘의 밤과 낮을 흘려보냈습니다. 고시식당에서 벽을 보며 한 방향으로 앉아 식사를 해결하고 사시사철 삼선슬리퍼와 추리닝 하나로 버텼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산다기보다는 견딘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던 곳……. 누가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던 곳, 고시원 옆방에서 누가 자살했다는 괴담이 떠돌던 곳, 그래서 어쩌면 다음 목을 맬 순서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주 엄습하던 곳, 꿈꾸는 청춘들의 암울한 공동묘지 같던 곳, 바로 신림동입니다.

-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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