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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기택의 ‘야생’ 해설

  • 입력 2019.04.22 15:34
  • 수정 2019.04.22 15:39
  • 댓글 0

야생

- 김기택

 

환하고 넓은 길 뒷골목에

갈라지면서 점점 좁아지는 골목에

어둠과 틈과 엄폐물이 풍부한 곳에

고양이는 있다.

좁을수록 호기심이 일어나는 곳에

들어갈 수 없어서 더 들어가고 싶은 틈에

고양이는 있다.

막 액체가 되려는 탄력과 유연성이 있다.

웅크리면 바로 어둠이 되는 곳에

소리만 있고 몸은 없는 곳에

고양이는 있다.

단단한 바닥이 꿈틀거리는 곳에

종이박스와 비닐 봉투가 솟아오르는 곳에

고양이는 있다.

작고 빠른 다리가 막 달아나려는 순간에

눈이 달린 어둠은 있다.

다리와 날개를 덮치는 발톱은 있다.

찢어진 쓰레기봉투와 악취 사이에

꿈지럭거림과 부스럭거리는 소리 사이에

겁 많은 눈 더러운 발톱은 있다.

바퀴와 도로 사이

보이지 않는 속도의 틈새를 빠져나가려다

터지고 납작해지는 곳에

고양이는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찢어진 쓰레기봉투와 악취 사이, 겁 많은 눈을 가진 짐승이 더러운 발톱을 드러냅니다. 웅크리면 바로 어둠이 되는 곳, 단단한 바닥이 꿈틀거립니다. 소리만 있고 몸은 없습니다. 고양이는 그러니까, 눈 달린 어둠입니다. 보이지 않는 속도의 틈새를 빠져나가려다 터지고 납작해지는 야생, 그들은 문명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공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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