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마지를 남긴 ‘남태보’ 군수를 기리며
[칼럼] 금마지를 남긴 ‘남태보’ 군수를 기리며
  • 고재홍 기자
  • 승인 2019.05.12 15: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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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金馬使君行금마사군행(금마 사군=군수가 떠나니)/九面萬男女구면만남녀(아홉 개 면 남녀가 모두 나왔네)/爭持使君啼쟁지사군제(앞 다투어 사군을 잡고 울부짖으며)/使君便莫去사군편막거(사군님 가지 말라 하네)/(중략)/官門抱馬足관문포마족(관청 문을 나서니 백성이 말 다리를 잡고 만류하니)/不畏馬上嗔불외마상진(말 위에서 그러지 말라 해도 두려워 않네)/却罵六年限각매육년한(6년으로 제한된 임기를 없애야 한다며)/枉殺金馬民왕살금마민(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금마백성만 죽는다네)/可憐乙丙年가련을병년(가엾고 불쌍히도 을해·병자=1755-1756에는)/斗米錢二百두미전이백(쌀 한 말에 이백 냥이었는데)/天遣活佛來천견활불래(하늘이 살아있는 부처를 보내주셔)/百姓依天德백성의천덕(백성들이 하늘의 덕을 입었네)(후략)

 

의령 남씨 남태보(1694~1773) 군수가 6년 임기를 마치고 1759년 떠날 때 백성이 울며 이별을 서러워했다. ‘노선과 신념, 취향이 비슷하다는 의미에서친구인 신광수(1712-1775)20자씩 32, 640자로 지은 금마별가金馬別歌. 신광수도 의금부도사로 탐라(제주) 지리·풍토 및 조운 등을 기록한 부해록浮海錄을 남겼으며, 연천현감을 지냈다. 말년 한양에 거주할 집이 없다는 말을 들은 영조가 집과 노비를 하사할 정도로 청백리였고, ’금마별가에서 굶주리는 농민과 피폐된 농촌, 관리 탐학과 횡포를 다뤘다. 그는 남태보 군수가 익산을 떠날 때 別南益山養五泰普歸楊根別業별남익산양오태보귀양근별업(양근=양평 집으로 돌아가는 양오 남태보를 보내며)라는 78행 율시 8수로 총 448자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남태보 군수가 1756(영조32) 저술한 금마지金馬志한글 번역서가 출간됐다. 남태보는 1748년 군위현감으로 부임해 농사 장려와 서당 창건 등 선정을 베풀고 군위읍지인 적라지赤羅誌1753년 편찬해 암행어사가 임금에 보고해 승서(승진)17548월 익산군수에 부임했다. 지금 금마·왕궁·춘포·삼기면과 팔봉동, 황등면 율촌리 및 삼성동 일부를 관할했던 익산군수로 선정을 펼쳤을 뿐 아니라 금마지라는 조선후기 귀중한 역사보고를 남겼다.

 

익산은 권근(1352-1409)이 고려말 1390년께 유배돼 성리학 입문서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했고, 유배 온 직후, ‘도익주到益州(익주에 도착해서)‘란 한시와 미륵사 선방에 거처하며 월야봉사지주사혜주月夜奉謝知州事惠酒라는 한시도 남겼다. 익주 으뜸 벼슬인 지주사가 유배생활 객고를 풀라며 술을 보낸 듯하다. 익산은 마한왕도뿐 아니라 1392년 창업한 조선왕조에 참여한 권근처럼 유배문화와 남태보 군수 같은 청백리로 유명한 인물의 고장이다.

 

금마지한글판 번역본은 앞쪽에, 한문 원문은 뒤쪽부터 인쇄했다. 조선후기 익산 역사와 문화, 지리, 사회 등의 자료가 담긴 문헌자료총서다. 17548월 익산군수로 부임한 남태보가 부임 2년만인 1756년 저술한 익산군 지리지로 세계유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비롯해 쌍릉, 사자암, 보덕성, 관아, 누정 등 18세기 익산을 생생히 엿볼 귀중한 자료다. 금마지는 상·하권 총 77개 항목으로 편성됐고 71개 항목 상권에는 읍호邑號, 건치연혁, 강역, 기후, 형승, 산천, 토산, 약재, 호구, 전결, 조세, 무반, 군기, 성씨, 풍속, 학교, 사묘, 사찰, 고적, 유림, 열녀, 능묘 등 익산현황을 꼼꼼히 소개했다.

 

하권에는 마한폐흥, 마한고사, 금마유사, 향리기언 등은 기자-기준-마한-금마 등 익산역사를 남태보 군수 시각으로 기록했다. 특히 금마유사에는 마한왕릉인 쌍릉 도굴과 고려말 왜구 침입을 다루며 향리기언은 이행검, 이공수, 소세양, 소세량 등 고려·조선조 인물을 다루었다.

 

추후, 익산군 옛 청사를 세울 때 남태보 군수를 청백리 표상으로 기릴 동상이나 초상화 등을 익산인물관이나 남태보 공원에 조성해 영원토록 추앙해야 한다. 원나라 순제 비인 기황후 추향楸鄕(조상묘가 있는 마을)이나 외향外鄕(외가 마을)이어 유비의 서촉 익주益州를 따 승격될 정도로 신의와 의리를 상징한다. 익산이씨 이행검외손녀가 기황후이고, 이행검 손자가 이공수다. 남태보 군수 선정은커녕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의리 없는 세태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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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19-05-29 06:24:39
좋은 의견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