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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손택수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해설

  • 입력 2019.05.13 16:46
  • 댓글 0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 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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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목욕탕에서 등 밀어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한다는 이 말은 수많은 여아들이 세상의 빛을 못 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지나, 이제는 대중목욕탕도 점차 사라지고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흐릿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들에게는 이 말이 한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들은 목욕 한 번 같이 가주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조금 더 머리가 커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아버지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목욕탕에 가지 않은 이유가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아들은 오랜 소원 하나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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