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같이
- 장석남
내 작은 열예닐곱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이제 겨우 막 첫 꽃 피는
오이 넝쿨만한 여학생에게 마음의 닷 마지기 땅을 빼앗기어 허둥거리며 다닌 적이 있었다.
어쩌다 말도 없이 그 앨 만나면 내 안에 작대기로 버티어 놓은
허공이 바르르르르 떨리곤 하였는데
서른 넘어 이곳 한적한, 한적한 곳에 와서 그래도는 차분해진 시선을
한 올씩 가다듬다보니 눈길 곁으로 포르르르 멧새가 날았다.
이마 위로, 외따로 뻗은, 멧새가 앉았다 간 저,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차마 아주 멈추기는 싫어 끝내는 자기 속으로 불러들여 속으로
흔들리는 저것이 그때의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
외따로 뻗어서 가늘디가늘은, 지금도 여전히 가늘게는 흔들리어
가끔 만나지는 가슴 밝은 여자들에게는 한없이 휘어지고 싶은 저
저 저 심사가 여전히 내 마음은 아닐까.
아주 꺾어지진 않을 만큼만 바람아,
이 위에 앉아라 앉아라.
어디까지 가는 바람이냐.
영혼은 저 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같이
가늘게 떨어서 바람아
어여 이 위에 앉아라.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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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뒤돌아보면 “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마냥 가늘게 떨리던 풋사랑의 시절만큼 아름다운 시절도 없습니다. 청춘의 봄날, 소년은 “오이 넝쿨만한 여학생에게 마음의 닷 마지기 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말도 없이 그 앨 만나면” “작대기로 버티어 놓은/ 허공이 바르르르르 떨리곤” 했습니다. “아주 꺾어지진 않을 만큼만” “한없이 휘어지고 싶은” 서른, 여전히 가늘게 흔들리고 있는 그 마음속에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