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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황인찬의 ‘인덱스’ 해설

  • 입력 2019.06.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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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 황인찬

 

동네의 오래된 폐가였다

이곳에 오면 미래의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그러한 말을 나는 믿었다

숨을 쉬면 빛이 흩어지는 곳이었고 어두운 데로 무엇인가 몰려가는 곳이었다

나는 자정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내일이 왔다

이 어두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알았다 내 사랑의 미래가 거기에 있고 지금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

나는 깜짝 놀라서 집을 나왔고

이제부터 평생 동안 이 죄악감을 견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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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무렵, 자정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세숫대야 속 맑은 물을 들여다보면 미래의 배우자 얼굴을 볼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웃었지만 몇몇은 그날 밤 남몰래 일어나 검은 세숫대야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시의 화자 역시 “사랑의 미래”가 궁금해서 그것을 볼 수 있다는 폐가에 갔습니다. 자정을 넘기고 다음 날이 될 때까지 기다린 끝에 그는 사랑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미래를 본 화자는 깜짝 놀라서 얼른 그곳을 나왔고, 그 후 오래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결말을 알 수 없는 서사를 살아내야 합니다. 미래를 훔쳐보고 싶지 않은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말을 알지 못하기에 끝까지 책을 읽게 되는 것처럼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사랑도 그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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