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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송찬호의 ‘찔레꽃’ 해설

  • 입력 2019.06.17 15:57
  • 댓글 7

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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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 한 편에 압축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시는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결혼식날 찔레나무 밑 하얀 사기 사발 속에 마지막 편지를 남겨놓았습니다. 남자는 그 편지를 차마 다 읽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고 맙니다. 그렇게 이십 년 넘게 타지를 떠돌다 어느 날 남자는 그때 그 찔레나무 밑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벙어리처럼 하얀 찔레꽃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시를 읽을 때는 하얀 찔레꽃 아래 울고 있는 오월의 뱀에게 마음을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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