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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여성민의 ‘접은 곳’ 해설

  • 입력 2019.07.02 18:12
  • 수정 2019.07.0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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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은 곳

-여성민

 

그늘을 보면 누군가 한 번 접었다는 생각이 든다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잃어버린 삶이 이쪽에 와 닿을 때 빛과 어둠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을 수긍해야 하는 날 접을 곳이 많았다 접은 곳을 문지르면 모서리가 빛났다 창문과 절벽은 무엇이 더 깊은가

어떤 대립은 갑자기 사라졌다 모서리가 사라지듯 그런 날은 거리에 전단지가 수북했다 수도자의 발자국처럼 바람에 떠밀리며 가는

죽은 자들의 창문이거나 한 장의 절벽

버릴 수 없는 고통의 한 쪽을 가장 잘 접은 곳에서 귀는 생긴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몇 번 접으면 꽃이 되듯

종이처럼 눌린 분노를 접고 접으면 아름다운 거리가 된다

어떤 창문은 천 년 동안 절벽을 누를 것이다 창을 깨면 새들이 쏟아진다 죽은 새를 접으면 고딕의 지붕 접은 곳을 펴면 수도자의 기도는 다른 영역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리는 깨끗했다 기도하기 위해 손을 모으면 지붕의 모서리가 보였다 지붕에 지붕을 업으면 죽은 새 손을 찢다 자꾸 죽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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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접어야 하는 순간이나 어쩔 수 없이 접고 들어가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수긍할 수 없는 것을 수긍해야 하는” 때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그렇게 접힌 부분은 “버릴 수 없는 고통의 한 쪽”이 되어 마음 한 켠의 그늘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그늘을 보면 누군가 한 번 접었다는 생각이” 드는가 봅니다. 하지만 접힌 부분에 귀가 생기듯, 아픔을 겪고 난 후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귀”가 생깁니다. 그렇게 접힌 귀가 여러 개 생기면 “꽃”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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