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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고영민의 ‘개가 사라진 쪽’ 해설

  • 입력 2019.08.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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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사라진 쪽

-고영민

 

그림자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불붙은 개는 저쪽에서 달려올 테지

 

댓잎이 나오는 지금쯤

어린 장어는 강에 오르고

열세 명이나 들어가던 늙은 팽나무엔 연초록 새잎이 돋고

발목에 가락지를 채워 보낸 새는

다시 돌아오고

 

누가 개에게 불을 붙였나

달려도 달려도 불은 떨어지지 않고 개는

무작정 또, 달리고

 

나는 언제부터 지루해졌을까

차량정비소로 뛰어든 개는

결국 건물 한 동을 홀라당 다 태울 텐데

그사이 봄은 여름에게 저녁은

밤에게 몸을 내어주고

 

개가 전속력으로

개로부터 빠져나가는 저녁

아무리 도망쳐도 너를 위한 몸은 없다고

모든 그림자는 가장 길게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데

 

나는 우두커니

개가 사라진 쪽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녁노을 속을 개가 달리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개는 쉬지도 않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마치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봄날은 가고 열정도 사라져버렸습니다. 화자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지루해졌을까라고. 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지루해졌을까요? 전속력으로 같은 삶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나를 위한 세상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아니면 기껏 빠져나온 그림자가 밤에게 몸을 내어주고말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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