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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장만호의 ‘적벽가’ 해설

  • 입력 2019.08.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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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가

- 장만호

 

  사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불같은 상처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가령 한 말의 술을 마시고 한나절의 비를 맞고도 자벌레처럼 움츠리던 적이 있었는데 비 맞은 매미처럼 떨었는데 그런 날이면 나 적벽에 가고 싶었네 나 그저 생전에 하나의 태몽 어느 여름날 어머니의 꿈속을 유영하던 어린 물고기였을 뿐인데 그 윤회의 강에서도 나는 이 사랑을 꿈꾸었던가

  큰물 지면 큰물이 흐르고, 물은 더욱 단단한 뼈와 흰 힘줄을 갖고, 그 힘으로 나를 덮치고, 사랑은 물처럼 흐르고, 젖은 깃털처럼 나를 가라앉히고, 나무들은 강둑으로 얼굴을 내밀고, 네 설움 가소롭다, 어디서 어머니의 목소리 들리고, 적벽은 보이지 않고, 나는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고……

  사랑을 하고서도 우화하지 못하네 그대의 龍門 아래 상처는 비늘처럼 빛나고 나 화석처럼 단단해져만 가네 어느 새로운 날들은 오지 않고 그곳에 가서 차라리 풍화되고 싶었지만 나는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았네 물 건너지 않았으므로 가지 못한 적벽에 그대가 풍화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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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사랑은 닮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맑고 투명한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어 늘 목이 마릅니다. 그러다 그것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덮치는 날이 오면, 우리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젖은 깃털처럼” 가라앉기도 하고, 때로는 “꿈속을 유영”하기도 합니다. 그 꿈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상처는 비늘처럼 빛나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화석처럼 단단해져”야만 합니다. 결국, 우리는 그것 덕분에 닿지 못한 저편의 “적벽”을 그리워하며 그저 풍화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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