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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소연의 '뇌태교의 기원' 해설

  • 입력 2019.09.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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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태교의 기원

- 이소연

 

 은빛 잠을 수집하는 뇌의 바깥에는 조용한 산책과 쇼팽의 음악이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관념으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을 좋아해요 덩달아 창을 물어뜯는 별자리의 감성을, 나무 위에 앉은 곤줄박이의 감정을, 마당 앞의 바위의 감상을 좋아해요

 그때 뇌는 주글주글한 감성과 지성을 가공하고요 나는 뜨개질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바늘코에 걸린 실 한 가닥으로 일요일 붉은 공화국에 대해 점을 치는 거죠

 그러나 굴뚝이 아름다운 공장지대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피해야 해요 뇌는 풍경을 쪽쪽 빨아 먹고 조금씩 단단해지거든요 참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면 뇌가 더디게 어제의 풍경을 음미할지도 몰라요

 뇌를 호두알로 생각하면 위험해요 뇌는 오 분간의 육류를 꼭꼭 씹는 것을 황홀해해요 하지만 나는 핏줄과 신경, 눈 코 입을 위해 십 분간의 채식을 하지요 식물성은 아이의 성격과 눈동자의 색까지 결정하니까요

 나는 감상적인 욕조 속에서 돌고래들의 꿈을 꾸고, 뱃속의 아이는 벌써 뇌태교의 기원을 생각하는지 양수를 동동 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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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포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다시 네 개가 되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일은 경이롭습니다. 아이가 키를 늘리고 뇌에 주름을 하나씩 늘리려 애쓰는 동안, 밖에서 엄마도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며 아이가 본인의 과업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쇼팽을 듣고, 별자리를 헤아리고, 새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자극적인 것을 멀리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도록 신경 쓰면서 말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작은 코 하나에서 시작된 뜨개질이 커다란 옷을 완성하듯, 자연의 도안을 따라 작은 생명체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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