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미산의 ‘늘’ 해설

  • 입력 2019.10.01 14:40
  • 댓글 0

- 이미산

 

모퉁이 돌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를테면

트럭이라는 나무

 

알록달록한 열매들, 떨어지려는 과일 하나

 

중얼거리거나 구시렁거리거나

번져나가는 불콰한 향기

 

향기의 유효함이란

사내의 눈동자 속 시들지 않는 아내

끈질기게 지켜보는 나무, 끝내 남겨질 모퉁이, 가령

잘 익은 과일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리막이 태어날 때

침묵은 나무를 다 삼켜야 하나

삐져나온 살점 숨겨야 하나

 

잘 익은 열매는 잘 보관할 주머니가 필요할 테고

 

모퉁이 돌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를테면

한 사내가 남긴 독백 같은

두리번거리는 낙엽들

 

누군가 슬그머니 오줌을 내려놓고

헐떡이는 숨소리 나눠주고

사내라는 가지처럼 부르르 떨다가는

날마다 달빛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져 그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혹은 늘 봐온 풍경이라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그 무엇일 것들을 무심히 지나친 경우는 없으셨습니까? 여기, 트럭에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파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트럭을 세우고, 늘 같은 나무 그늘에 앉아 과일을 팝니다. 그는 때때로 “중얼거리거나 구시렁거리거나” 하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나무와 구별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슬그머니 일어나 낙엽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다 노상 방뇨를 하는 순간에야 나무가 아닌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놓치면 후회할 이시각 핫이슈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