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문화원, 유관순·조병옥 생가·현충사 탐방 성황
익산문화원, 유관순·조병옥 생가·현충사 탐방 성황
  • 고재홍 기자
  • 승인 2019.10.13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장과 사무국장, 회원들이 어우러진 문화역사탐방

 

[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익산문화원(원장 이재호) 문화대학 교육과정 일환인 사전교육과 현장답사가 문화원장과 최윤호 사무국장 등과 회원 170여 명이 어우러진 교육과 탐방으로 이루어져 수확의 계절, 알찬 결실을 맺는 뜻 깊은 행사로 마감됐다.

특히 이번 답사교육은 3.1운동 1백주년을 기념하고, 수출규제 등 일본의 경제압력에 ‘안 가고 안 사기’가 수개 월 째 이뤄지는 상황에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 생가, 독립기념관과 현충사를 돌아보는 것으로 진행돼 알찬 답사였다.

지난 6월 이용희 익산의병기념사업회 회장이 “1907년 팔봉면 석암리에서 이규홍 의병장을 비롯한 257명 청년들이 일어나 5개월간 세 차례 전투에서 왜병 129명을 사살하고, 이규홍 등 의병 85명이 전사한 일대 사건”임을 설파했다. 김복현 전 익산문화원장도 3.1운동 역사를 설명하고 운동 배경과 진행상황 및 결과와 익산지역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경제침탈에 맞서는 당위성과 방법을 해박한 역사지식과 함께 열띤 강의를 펼쳤다.

이런 강의를 바탕으로 나선 현장답사는 이달 8일과 10일, 11일(버스 2대) 등 총 세 번에 걸쳐 문화원 관계자와 회원 등이 참여했다.

오전 8시 문화원을 출발한 버스는 천안 유관순 열사기념관에 도착했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1902-1920)은 학교가 휴교하자 독립선언서를 갖고 고향에 내려와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현장에서 부모는 왜병 총탄에 숨졌다. 자신도 지독한 고문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 장렬하게 순국했다. 온 가족이 일제에 맞서 싸우다 풍비박산 된 셈. 회원들은 묵념을 마치고 기념관 등 성역화 현장을 둘러본 후, 10분 거리 유관순 열사 생가와 매봉교회를 답사했다.

1902년생인 열사가 천안 한적한 농촌에서 이화학당을 다닐 정도로 상당한 선각자 집안이었음도 알게 됐다. 지척 ‘유석 조병옥 생가’를 돌아봤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여부와 친일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유명한 ‘병천순대‘ 거리로 가서 석판에 구운 돼지갈비와 맛이 특이한 순대인 ’석갈비와 순대‘ 등으로 푸짐한 점심을 들고,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광활한 면적에 조성된 ‘겨레의 탑, 겨레의 집’ 등과 6개로 구성된 전시관 등을 구경하기에는 두 시간도 턱없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로 세웠다가 해방 후, 중앙청으로 활용된 후, YS가 역사 정통성을 세운다며 헐었던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을 돌아봤다. 한반도와 만주 및 동남아를 석권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제의 잔해라고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아산 현충사로 향했다. 이순신 장군이 결혼한 무남독녀 처가 동네로 장군이 이 곳에 머물렀을 때 은행나무와 활터 등이 보존됐다. 순국 후, 숙종이 세운 ‘구 현충사’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방대하게 성역화 당시 세워진 ‘현충사‘가 별도다. 1966년부터 74년까지 추진된 성역화사업에는 재벌 등이 기부한 반송 등 각종 수목이 매우 뛰어나다.

구 현충사 주련柱聯(기둥이나 벽 등에 장식으로 쓴 글씨) 첫머리에 위당 정인보(1893-1950) 선생이 쓴 ‘일서해산립 강산어백대一誓海山立 綱常於百代(바다와 산에 한 번 서약하니 삼강과 오상이 영원히 후세에 이르리...)라는 글을 뒤로 하고 전북으로 향했다.

이재호 원장은 “이번 답사는 3.1운동 1백주년과 일제 경제침략 등에 맞서 특별히 유관순 관련유적과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현충사 등을 찾게 됐다”며 “더욱 알찬 강의와 문화답사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