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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서안나의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해설

  • 입력 2019.10.1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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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 서안나

 

  지상에서 남은 일이란 한여름 팔작지붕 홑처마 그늘 따라 옮겨 앉는 일

  게으르게 손톱 발톱 깎아 목백일홍 아래 묻어주고 헛담배 피워 먼 산을 조금 어지럽히는 일 입교당 담벼락에 어리는 흙내 나는 당신을 자주 지우곤 했다

  하나와 둘 혹은 다시 하나가 되는 하회의 이치에 닿으면 당신은 당신으로 흐른다

  삼천 권 고서를 쌓아두고 만대루에서 강학(講學)하는 밤 내 몸은 차고 슬픈 뇌옥 나는 나를 달려나갈 수 없다

  늙은 정인의 이마가 물빛으로 차고 넘칠 즈음 흰 뼈 몇 개로 나는 절연의 문장 속에서 서늘해질 것이다 목백일홍 꽃잎 강물에 풀어쓰는 새벽의 늦은 전언 당신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의 문장들이 다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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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분위기에 애절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인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쉽게 만나고 쉽게 연락할 수 없었던 그 옛날, 그 애절함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겠죠?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늙은 정인의 이마가 물빛으로 차고 넘칠 즈음 흰 뼈 몇 개로 나는 절연의 문장 속에서 서늘해질 것이다”라고 하여, 이루지 못한 사랑을 오래도록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 ‘하심(下心)의 문장들’로 가득 채운 시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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