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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인주의 ‘松下步月圖(송하보월도)’ 해설

  • 입력 2019.10.29 16:12
  • 수정 2019.10.2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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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下步月圖(송하보월도) / 이인주

 

  투영된 나무그림자 솔바람에 휘모리진다 밑둥에서 우듬지까지 놋다리밟기 한 길이다 하늘에 닿은 절절한 발자국 땅 위로 끌어내려 본떠본다 그림자에 잠긴 행보, 깊이가 골똘하다 달빛이 뉜 나무의 진면목이 검은 토설을 하고 있다 어느 의연한 뿌리의 족보가 이렇듯 아픈 침엽의 사서를 내장하고 있었을까 갈피마다 흘린 수액의 경전 낙락장송 흰 서사다 시간의 침식을 훔치고도 꿈쩍 않는 나무와 흔들어야 직성인 바람의 화간처럼 달빛이 풀린다 근경이 원경을 업고 내려놓을 자리를 살필 동안 동자가 줄곧 달빛 보폭을 헤아린다 가늠할 수 없는 걸음을 재는 어리고 티없는 걸음, 그 사이 잠긴 뜻이 고요하다 구름에 자맥질하는 발이어도 그림자 거느린 음덕이 山高水長이다 환하게 빚은 절편에 꽂힌 솔바람 한 그루, 밟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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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보월도는 바람이 부는 달밤의 정경을 담은 이상좌의 그림입니다. 벼랑 위에 자란 멋들어진 소나무 아래, 도포 입은 선비 하나가 동자와 함께 거닐고 있습니다. 선비의 수염과 옷자락, 소나무 가지 그리고 가지에 매달린 넝쿨들이 거센 바람 때문에 한 방향으로 나부끼고 있어 위태로워 보입니다. 그런데 화면 위쪽, 소나무 너머 저 멀리에 떠 있는 둥근 달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이 시는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의 역동적인 모습을 문자로 스케치한 고풍스럽지만 힘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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