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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전북
  • 기자명 고재홍 기자

무형문화재 ‘김옥수‘ 석장 공개행사, 성황

  • 입력 2019.12.0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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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전북도 무형문화재 제36호 ‘김옥수(65)‘ 석장 공개행사가 11월 29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일심석재‘ 작업 및 전시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01년 석공예명장에 지정되고 2006년 11월 무형문화재 석장으로 지정된 김옥수 명장은 보성군 출신으로 일심석재는 그가 일군 사업장이자 전시장이다. 당시 농촌이 그렇듯 가정형편은 중학 진학을 허락지 안했다.

1968년, 13세에 상경해 오직 먹고살기 위해 동대문구 망우리에서 석재기술을 배워 51년 석재기능인에 들어선다. 공부하는 친구를 보면 부러움과 좌절에 빠지기도 했으나 무거운 쇠망치로 돌을 깨며 "이것도 공부다"며 악물고 배웠다. 실수나 오작도 있어 스승에 쇠자로 맞는 것도 많았다. "먹는 것도 부실해 배고픔과 서러움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라는 김씨는 작품이 타인에 인정받을 때 과거도 잊혀졌다. 철저한 책임완수로 칭송도 많았다.

20세 때 돌 다루는 기법이 추종을 불허해 모셔가기 경쟁도 벌어졌다. 75년 석공인이 아닌 '김옥수'라는 인간으로서 기회가 왔다. 국제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한 것. 

김씨는 황등석으로 유명해 ‘돌의 고장’이라는 익산에서 능력을 발휘하려고 84년 이사를 와 정착했고 88년 일심석재를 설립했다. 일본 오사카에 석조각품 및 석공예품을 수출해 외화획득도 했다. 오사카 석재공단에서 1년간 일본 석재기술과 석조예술을 연구했다. 

2001년 ‘대한민국 석공예명장’에 이르자 힘들었던 과거가 자랑스런 석공예 후예로 성장케 한 동기였다고 여겨졌다. 일심석재는 각종 조형물 및 사찰공사와 납골묘, 조경과 건축석 기타 석재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많은 기능인 배출과 대회입상, 국가기술자격증을 획득하고 석재수출로 외화를 획득했으며, 전국 사찰공사를 도맡았다.

김씨 등은 91년 '돌문화보존회'를 발기해 사단법인화해 김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97년부터 전국돌문화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석공예명장 심사위원, 전국기능경기대회 및 전북지방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대한광업진흥공사 석공예강사 및 한국폴리텍VI대학 명예교수, 전국돌문화축제위원장 및 (사)돌문화보존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거나 역임했다. 김옥수 씨에 전북도는 2006년 11월, 무형문화재 제36호 석장(石匠, 석조각) 보유자로 인정서를 발급했다. 대한민국 두 번째이자 전북 최초 석조각 무형문화재다. 무형문화재로 매년 벌이는 이번 공개행사에는 호원대 역사학과 채수환 교수와 익산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 정이권·나기화·안동복 씨 등 김씨 전수생 등 1백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김씨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과 ‘아미타부처’ 및 ‘지장보살’ 제작과정을 시연했으며 전시관에서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소개도 있었다.

한편, ‘김옥수 인간문화재’는 수십여 차례 수상과 수십여 회 전시회를 가졌으며, 전국에 걸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작품을 남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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