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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영찬의 ‘나의 시집’ 해설

  • 입력 2019.12.03 11:11
  • 댓글 0

나의 시집 / 김영찬

  

 나 오늘밤 새로 집 한 채 지을 것이네

 

 창문만 있고 질문 없는 집

 손님만 있고 주인 없는 집

 응답만 있고

 주제도 없어 이상하지만 말없는 가구를 사들이고

 과묵한 벽면을 색칠해야지

 꽃 피울 유실수와 그늘 푸른 관목들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을 새들을 위한 둥지들조차 글쎄

 꾸며놔도 나쁠 거야 없지  

 

 그래야겠네,

 불필요한 질문과 쓸데없는 대문은 생략했지만

 누구나 함부로 지붕 뜯고 들어와

 한참을 울다가 떠나도 상관할 사람

 아무도 없는 집

 

 있어도 없는 집 

 없어도 좋은 집

 처음부터 끝까지 울타리는 없지만

 울타리 둘러치고 앉아

 담장 밖의 바람소릴 끌어 모으기 아주 편한 집

 

 푹신한 소파에 잠깐 동안 가면을 취해도 햇살 달려와

 이불 덮어주는 집

 때 되면 달빛 출렁 창문 흔들어

 커튼 가려주고

 꿈결에 흔들린 꿈들이 푸른 원고지에 검은 잉크를

 풀어놓는 집

 

 가정법 과거완료가 아니라 눈 깜빡거리는 이 순간의

 현재완료 진행형으로 가용 가능한

 가상의 힘

 

 밤이면 밤마다 나 집 한 채 지었다가 허물고 

 또 다시 꾸미며 살아왔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세상에는 밤마다 집을 지었다 허물고 또 지어야 하는 천형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시인입니다. 시인은 푸른 원고지에 검은 잉크로 시집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햇살과 달빛과 꿈으로 정성 들여 꾸며 놓았지만, 시인에게 시집이란 내가 지었지만 내 것이 아닌 집입니다. 그 집은 위로받고 싶은 사람 누구나 함부로 지붕 뜯고 들어와/ 한참을 울다가 떠나도 상관할 사람/ 아무도 없는 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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