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칼럼
  • 기자명 내외일보

<사설>복지 포퓰리즘으로 영·유아 무상보육 중단 위기

  • 입력 2012.07.09 12:57
  • 댓글 0

시행 반년을 맞은 0~2세 무상보육이 중단위기에 처해있다. 올해부터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0~2세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보육료 월 28만~39만원을 지원받는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0~2세 자녀를 키우는 경우에 주는 양육수당은 차상위계층(약 15%)까지 10만~20만원을 지원한다. 이처럼 지원 금액이 차이가 나자 가정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전업주부마저 너도나도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겼다. 이러다보니 정작 보육시설을 꼭 이용해야 할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 오히려 어린이집 이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바람에 보육시설 이용률이 정부 예측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이에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된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보육비 지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서울시는 지방정부가 80%)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위해 책정된 지방정부의 재원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보육 수요가 폭증하면서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 예산이 이미 바닥이 난 상태이다. 지방정부 부담 비율이 높은 서울 서초구의 당장 이달 10일이면 배정된 예산이 소진된다고 한다. 서초구 경우 당초 무상보육 대상은 1,665명이었으나 지금은 5,113명으로 3배 이상이 됐다. 서울의 다른 구청들도 사정이 비슷해 중앙정부의 별도 예산지원이 없으면 8~10월 중이면 예산이 바닥날 지경이다. 서울 외 지방도 9월부터 12월 사이에 무상보육 예산이 줄줄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초 정부 예산안은 소득 하위 70%에 대해서 보육 지원을 하고 이를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는 내용이었으나, 국회가 지난해 말 일방적으로 0~2세 무상보육을 결정하고 예산안을 수정해 통과시켰다. 3~4세보다 0~2세 무상보육을 먼저 채택한 것은 해당 아동의 수가 적어 예산부담이 적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판단 착오는 심각한 현실로 닥쳤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3일 “현재의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은 재벌가의 아들과 손자에게도 정부가 보육비를 대주게 되는데, 이런 제도가 공정한 사회에 맞는 것이냐”며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 선별 보육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예산 부처의 차관이 여·야 합의로 의결한 전면 무상보육을 전환하자고 했을까.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물론 보건복지부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보육료 지급이 중단되면 그 피해는 저소득층에게 돌아간다.
 
올해 보육·유아 교육에 쓰는 예산은 총 8조1,934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5년 1조9,651억원에서 7년 만에 4.2배로 급증한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강화하고, 정치권은 2030세대를 겨냥한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예산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0~5세 277만명 중 어린이집에 다니는 133만명, 유치원에 다니는 56만명 등 190만명(지난해 기준)이 연간 평균 412만원(한달 34만원)의 혜택을 보게 됐다. 이처럼 보육 복지가 강화되면서 수혜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 어린이집 원장, 보육교사 등 정책 수요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3~4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보육료가 동결돼 불만이 폭발하고, 일부선 현장학습비 등 보육료를 편법으로 올려 부모들 입장에선 무상보육 체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유아 무상보육제도의 파탄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추진한 결과이다. 국회와 정부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 득표를 위해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상복지 포퓰리즘이 부른 결과이다. 당시의 우려가 이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3월 전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치권과 중앙정부가 밀어 붙인 무상보육제도를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보육 현장은 혼란이 심각한데도 여·야 정치권은 기존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예비비 2조4,000억원 중 4분의 1을 보육비 지원에 충당할 경우, 만일 대형 태풍이나 재난이라도 닥칠 경우 난감해 질것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은 타당한 복지정책이다. 그러나 정책은 우선순위, 부담능력, 효과를 치밀하게 점검해서 결정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소득에 관계없이 아동수당을 지급하되 유치원 보육료는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 이들 나라에서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가정은 거의 맞벌이 부부이다. 육아휴직·출산휴가 같은 혜택이 북유럽 수준으로 보장되면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고 집에서 키우려 할 것이다.

정부관계자는 “현 제도와 내년에 시행될 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놓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재정 여건도 고려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책이 잘못되면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당장 무상보육비 지원 중단사태 수습대책 마련을 심도 있게 논의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내놔야 한다. 무상복지 포퓰리즘의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 정부는 현행 무상보육 정책의 문제점들을 바로 잡고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 경쟁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놓치면 후회할 이시각 핫이슈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