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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박용래의 ‘월훈(月暈)’ 해설

  • 입력 2020.02.1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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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훈(月暈) / 박용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뚝,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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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로 노루꼬리처럼 짧은 해가 꼴깍, 넘어갑니다. 모과 빛 등불이 켜지면 창호지 문살에 달무리(월훈)가 어리고, 자리에 누운 노인의 기침소리도 잦아지는 마을. 가만히 엎드려 새들의 온기를 생각하는 밤, 아무도 오지 않는데 자박자박 환청처럼 발소리 들려오고 문밖에선 함박눈만 무심하게 흩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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