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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칼럼] 충북진천·전북부안과 김유신 장군(땅)

  • 입력 2020.05.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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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전북부안과 충북진천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생거부안生居扶安·생거진천鎭川에서 같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595~673) 장군은 경주나 김해 출생으로 생각하지만 진천 태생이다. 부안에는 김유신을 모시는 사당과 사패지 및 김유신 장군 소유 땅도 있다. 백제 부흥운동 본거지인 주류산성(우금산성) 아래 개암사 입구다. 일제가 등기제도를 도입했는데 김유신 장군 명의 땅이 부안에 있다니 해괴한 소리라고 할 분도 있을 법하다.

“물산이 풍부한 진천에 살다가 아름다운 산기슭 용인에 묻힌다.”는 ‘생거진천·사거용인’이란 말은 전 국민이 잘 알지만, “양택인 부안에 살고 음택인 순창에 묻힌다.”는 ‘생거부안·사거순창’이란 말은 주로 전북에서만 알려졌다. 전북에서는 ‘생거진천·사거용인’이란 말을 모르고 ‘생거부안·사거순창’이 전부인 줄 아는 주민도 많다.

바다도 없고 평야도 적은 산간내륙이 ‘생거진천’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농수산·임산물 등이 넘치는 생거부안이 맞다고 생각했다. 산업화로 달라졌다. 충북 북서부로 수도권에 가깝고 천안 동쪽, 청주공항 북쪽이어서인지 1965년을 정점으로 90년대까지 감소했으나 2000년 6만1131명에서 20년 4월 8만1483명으로 급증해 생거진천이다. 생거부안은 새만금 장밋빛 청사진과 희망 고문(?)에 홀려 30년(만29년)을 허송해 수산물감소 등으로 생거무안無安·불안不安이다. 충남은 네달란드 역간척 현장을 찾아 부남호 역간척을 추진 중인데 전북은 해수유통 상생방안이 있음에도 100년이 걸릴 ‘끝없는 매립공사’에 몰빵(올인)이니 한숨만 나온다.

DJ는 95년 전남 신안·경기 포천 부친·모친·본부인 묘소 등 3기를 풍수가 故손석우 추천으로 용인시 이동읍으로 이장 후, 97년 대권을 획득했다. 이후 정치인 조상 묘 이장이 흔해졌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46년 지관 ‘정만인’ 말을 듣고 ‘두 명 천자가 나올 자리二代天子之地’라는 가야산 가야사에 불 지르고 부친 남연군 묘를 옮겨 흥선군 아들·손자인 고종·순종이 황제가 됐다는 풍수를 믿는 분도 많다. 용인에는 공원묘지도 많고, 이순신 장군 조부 ‘백록‘ 묘 등 유명인물 묘소도 많다. 용인시는 올 4월 106만8519명이 거주해 ‘생거용인·사거용인’이다.

마한·진한과 함께 삼한에 속하는 변한은 6가야로 발전했는데 김해 가락국(금관가야)으로 발전했다. 김수로가 왕이 됐고, 제10대 구형왕이 532년 신라에 항복했다. 구형왕은 김유신 증조부, 김무력은 조부, 김서현이 부친이다. 김서현과 만명부인이 김유신을 낳았으며, 김유신 여동생 문희는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결혼해 왕비가 됐다. 김서현이 만노군(진천) 태수로 부임해 김유신은 진천에서 태어났다. 최고 화랑인 국선을 거쳐 삼국통일을 달성하고, 당군을 축출했다. 태대각간에 올랐으며, 문무왕 13(673)년 79세에 서거했다. 흥덕왕 10(835)년 흥무대왕에 추존됐다. 왕이 아닌데도 신라왕이 된 유일 사례다. 장군 묘는 경주에 있다.

백제 부흥운동 최대 근거지였던 부안 주류산성 아래 개암사 입구에 김유신 위패와 영정을 모신 보령서원保寧書院(보령원)이 있다. 나당연합군과 함께 부흥운동을 격파한 김유신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성종은 부안군 상서면 봉은길(감교리) 사방 십리를 사패지로 하사했다. 철종 13(1862)년 비를 세우고 사우를 건립해 흥무대왕 존영과 위패를 봉안했다. 개암사開巖祠라 했으나 개암사開巖寺 절과 혼동을 우려해 보령원으로 개칭했다. 신라태대각간추봉흥무왕유적비 등이 남아 있어 김해김씨 후손들이 관리한다. 대지와 임야, 전답이 남아있다.

더욱 부안 거주 김해김씨가 광산김씨와 부안이 본관인 부령김씨·부안김씨 등을 합친 것보다 많은 5천명에 육박한다. 특히 아이러니한 것은 보령원 앞 ‘상서면 감교리 915-1 답 3035㎡’가 1347년 전, 서거한 김유신 장군 명의다. 구 등기부등본에는 개인·일본인·회사·개인을 거치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6년 김유신으로 소유권 이전이 등기부등본에서 확인된다. 후손인 ‘김영렬’ 부안문화원장에 의하면, 문중에 편입시키려고 누차 시도했으나 소유자 김유신에 대한 입증을 못해 이 필지만 김유신 장군 소유로 남아 문중에서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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